'이란'에 관한 글 1개

이란에서 있었던 일

2006년 6월 13일~16일
공항도착
일정 :
P.M. 06:40 인천공항 출발
P.M. 10:00 테헤란 국제공항 도착
항공편 : 이란항공
동행 : 김영화,곽숙희,장익수

4:00 정도에 공항에 도착하여 곽숙희 선생님을 만났고 약 40분정도 후에 김영화 선생님을 만났다. 축구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 APCEIU 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면서 앞으로의 사업방향에 대해서 토론 아닌 토론을 하게 되었다.

분명 6:40분 비행기였으며 테헤란과 서울의 시차는 5시간 정도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란 항공을 이용하여 장장 9시간 정도를 날아왔다. 비행기 밖의 날씨는 영하 -47 도라는 것을 알았으며 잠을 청하기에는 무척 추웠다. 이란에 도착 했을때의 첫 느낌은 인도에 도착했을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매연이 풍성하지만 그래도 정돈된 나라라는 인상을 받았다. 공항에서 체크아웃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출구는 그렇게 넓지 않았으며 나오는데 출입국심사를 제외하고는 무척 간소하였다.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까 하였지만 팻말을 보지 못해서 뒤쪽에서 기다리다가 픽업나온 사람을 후에 만나게 되었다. 글구 호텔로 이동 각방을 쓰면서 이 넓은 방에서 일주일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 갑갑해진 마음이 생겨난다. 그러나 적어도 힘들게 살아가는 나의 삶에 새로운 나라에 대한 경험은 소중하다고 생각되는 하루다. 샤워를 마친 후 내일 일정을 위해서 잠을 청해본다.

이란에 도착하고 나서 이동했던 호텔에서 일어나보니 이란시간으로 새벽 2:30 이었다. 우리시간으로하면 거의 7시정도다. 그러니 시차 적응이 안되서인지 계속 선잠을 자기 시작한다. 요즘들어 많아진 걱정때문인지 선잠을 계속 자게 된다. 푹 자고 내일을 준비해야 하는데 내일을 위한 준비는 사라지고 내일을 향한 희망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이런 불편한 하루하루가 계속 지속되고 있다. 7시에 원장님과 로렌스 서렌드라,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아침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차로 워크샵 장소로 이동한다. 차로 이동했던 시간은 거의 1시간 가까운 듯한 느낌이다. 그만큼 거리상 꽤 먼곳에 있는 곳이었다. 왜 계속 갑갑할까? 주님을 위한 삶을 살기때문이 아니기에 그러한 것인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가서 그런것인지 난 아직도 방황속에 있다.



페르시안 언어로 워크샵을 진행하고 그곳에서 영어로 통역을 해주는 작업이 한창이다. 인사말은 각 MOU 주최 기관들에 의해서 진행이 되었고 곧바로 강의가 진행된다. 날씨는 그렇게 찌는듯한 것은 아니었으나 더위가 느껴지기는 한다. 간식시간에 먹어본 열매도 맛있었다. 점심에는 샐러드와 빵이 나왔다. 이게 식사의 전부인줄 알고 아주 열심히 먹었는데 나중에 보니 닭고기에 쌀이 곁들인 음식이 한번 더 나오는 것이다. 결국 반정도 먹다가 그 이상 손보지도 못하고 반납했다. 오는길에 사나즈와 결혼할 사람의 차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아직 피곤이 풀리지 않았는지 눈이 스스로 감겨오기 시작한다. 저녁에 이란 유네스코위원회 사람들과 아프가니스탄 참가자, 그리고 아태교원연수 참가가 2명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너무 많이 시켜서인지 다들 한접시에 먹지도 못하고 그냥 돌려보낸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간다. 집에 돌아가기전에 페르시안 웹사이트에 대해서 조사를 조금 해봐야 할 것 같다. 어떻게 구축해 나가야 하는지 아직두 헷갈린다.

다음날은 주로 이라크 교육부 관련 학자들이 나와서 발표를 한다. 아침부터 찌는 더위에 잠시 산책을 하였으며 마음속에 솟아오르는 답답함들을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이제 서서히 본래의 자리를 찾아가고자 하는 마음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워크샵 참여자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2명 나머지는 정식으로 60여명이 되는 듯하다. 종일 강의와 참여학습을 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곳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 같다. 아태지역의 교육환경이라는 것이 어떤것인지 서서히 깨달아 가는 요즘이다. 그리고 내가 꿈꾸었던 것들이 이제 허무하다는 것 또한 인식해 간다.

오전과 오후의 모든 세션들이 거의 정리가 되어갈 때 쯤에 나는 생각해 본다. 계속 이야기를 해 가며 이란 사람들의 생활과 습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동시에 네개의 시즌이 존재한다는 것과 최고로 높고 낮은 온도차를 들으면서 역시 사람들이 산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 느껴질 수밖에 없다.

아르민과 사나즈의 친절로 이란의 커피샵 하나를 방문토록 함에 감사를 드린다. 자꾸 워크샵 참여하기가 어려워지는 이유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일을 하지 못하고 있기때문이 아닐까 고민도 해본다.

마지막날 아침에 차량 픽업이 안되어서 약간의 혼란이 있었다. 택시를 타고 가든지 아니면 다시 샤디에게 전화를 하든지. 일단 샤디에게 전화를 해서 그 문제를 해결하였다. 도착한 워크샵 장소는 하루종일 무엇을 해야 할지 예측된 곳인양 우리를 기다린다.

오전에는 그룹에서 발표된 소그룹별 발표로 이어졌으며 사실 번역을 해주는 것을 거의 듣지 못하겠다. 다시 한번 좌절감을 느낀다. 영어는 계속 어려워진다. 지난번보다는 들하지만 어떻게 의견을 조율하고 나가야 하는지 무서워진다.

오전워크샵이 끝나고 유네스코 테헤란 클러스터 사무소에 들러 ESD 에 대한 워크샵과 협력사업에 대한 긴 이야기를 들었다. 현지상황에 맞게 일을 하려할 때 진정한 협력을 하고자 하는 이유와 방법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그 말이 틀리지는 않다고 생각된다. 물론 여기서도 전혀 아무말도 할 수 없었으며 무엇인가 물어볼 수도 없었다. 이 상황에서 제일 편한 방법은 그냥 아무말 없이 듣기만 하는 것이다. 사무소간에 사업간에 정체성과 주도권에 대한 의견들이 있으나 역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기관간에 존재하는 이해관계를 풀어내고 해석해 나가는 가운데 삶의 여정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오후 세션에 교육부 차관의 강의가 있었으며 그것이 끝난 후에 마다비 스쿨을 견학하였다. 엄청난 시설이다. 이곳에서 행해지는 모든 교육들은 특권층을 위한 교육 시스템중의 하나겠지 하며 그 규모와 영향력에 조금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다. 그러나 역시 거대한 자본과 특권의 중심속에 있는 그런것들에 대해서 생각해 볼 때 감동적이기라기보다는 조금 씁슬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 곳이었다. 레자라자바리의 영어학원에 들렀다. 아이들이 한시간 이상동안이나 기다린 끝에 진행된 리셉션은 아주 극진하였다. 그리고 다들 몸이 피곤한 상태에서 음식점에 들러 저녁을 먹은 후 하루를 마무리 한다. 참 국제 면허증 없이 테헤란 시내를 돌았다. 고속도로와 함께…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나마 신난 일중의 하나였다.

마지막날 호텔에서 나와 테헤란 공항으로 가려고 할때 문제가 발생했다. 나의 호텔 경비가 지불이 되지 않아서 방을 뺄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내부적으로 여러가지 행정착오가 있었는가 보다. 이란 유네스코국가위원회의 실무자가 문제해결을 위해 호텔을 방문하고 나서야 난 호텔을 나설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이란의 여러가지 상황들을 잘 몰랐으며 어떻게 말을 해서 어떻게 나와야 할지 막막한 하루였다.



이란에 대한 기억이 여기에서 끝났으면 영영 이란이란 나라에 대한 느낌을 갖지 못했을 것 같다. 서울의 각박한 생활도 조금도 다르지 않은 그곳의 일상은 평상시 힘을 받지 못하고 있던 내 생활에 하나의 경종을 울리는 듯했다. 세상 어디든지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은 그렇게 다르지 않음을 시인했으니 말이다. 그랬다가 우리나라의 경주와 같은 지역방문을 하고 난 후에야 이란의 문화적 우수성을 알게 되었다. 그만큼 사람에 대한 삶의 모습과 이슬람에 대한 지식 조금이랑 인생에서 부딪힘의 부질없음에 대해 느껴본 하루를 마무리하며 귀국했다.
2006/07/25 00:14 2006/07/25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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