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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불능화 조치 중단” 선언의 배경과 향후 전망

조 민?박 형 중 (통일정책연구실장?남북협력연구실 선임연구위원)

조) 북한은 8월 26일 “영변 핵시설 불능화 조치 중단”을 선언했다. 오늘 대담을 통해 북한 핵시설 불능화와 신고?검증을 골자로 한 비핵화 2단계 과정을 짚어보고, 북한의 불능화 조치 중단 선언의 배경과 향후 정세를 전망해 보자.

싱가포르 잠정합의, 비핵화 2단계 종결 기대 모아

박) 지난 4월 8일 싱가포르에서 북한의 핵프로그램 신고에 대한 북?미 간 잠정합의가 이루어졌다. 합의 방향은 우라늄 농축 문제와 시리아 핵확산 의혹은 별개로 하고, 일단 플루토늄 문제만 신고하기로 합의하였다. 이런 점에서 싱가포르 잠정합의는 비핵화 2단계 마무리로 가는 길목으로 기대를 모았다. 싱가포르 합의에 탄력을 받아 5월(8~10일) 성 김 미국무부 한국과장이 방북해서 영변 원자로 가동일지(18,822쪽)를 받았고, 6월 26일에는 마침내 북한은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에게 핵 신고서를 제출했다.
그와 동시에 미국은 북한을 적성국교역법(Trade with Enemy Act) 적용 대상에서 해제했고, 테러지원국(State Sponsor of Terrorism) 명단 해제 절차에 착수했다. 그 다음날 27일에는 북한이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하는 세계적인 이벤트를 연출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7월(11~12일) 베이징에서 6자회담 수석대표회담이 개최되어 10월 말까지 북한의 불능화 완료에 맞춰 5개국은 대북 중유?비중유 지원을 완료한다고 합의하였다. 7월 23일에는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6자 외무장관 비공식 회동이 있었는데, 미국의 라이스 국무장관과 북한의 박의춘 외상도 참석하여 주목을 받았다.

조) 부시 미국 대통령은 북한의 핵 신고에 맞춰 의회에 테러지원국 해제 절차를 통보했다. 그 후 미국은 북한의 핵 활동 검증 절차 없이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는 어렵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혀왔다. 그러나 북한이 검증 계획서(프로토콜) 작성을 거부함으로써 타깃 타임(8.11)을 넘기고 말았다. 그러자 북한은 14일에 핵 연료봉 추출을 중단한다는 사실을 관계국에 통보하였고, 성 김 대북특사 방중(8.14~16일) 시기에 북?미 양자회담도 무산되었다. 20일 북한 외무성은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검증은 매우 부당한 요구라는 입장을 밝혔고, 이어 어제(26일) 북한 외무성은 “핵시설 불능화 작업 중단, 영변 핵시설 원상복구 조치 고려” 라는 입장을 선언함으로써 비핵화 2단계 마무리 단계에서 예기치 못한 난관이 조성 되었다.

불능화 어디까지 왔는가

박) ‘10?3 합의’에 따른 불능화 조치는 현 단계 11가지 조치 중에 8개가 완료된 상태이다. 미완료된 3개 조치는 원자로 내 △‘사용 후 연료봉(폐연료봉)’ 인출, △미사용 연료봉 처리, △원자로 제어봉 구동장치 제거 등으로 현재 진행 중이거나 아직 시작되지 않은 사안이다. ‘사용 후 연료봉’ 인출 상황을 보면, 북한이 5개국 대북 에너지 지원이 지연되고 있다는 이유로 인출 속도를 늦추면서 현재 8,000개 중 약 60% 4,800여 개의 연료봉이 인출된 상태이다. 미사용 연료봉 처리 방식에 관해서는 6자회담 당사국 실무논의가 진행 중이며, 제어봉 구동장치 제거는 ‘사용 후 연료봉’ 인출이 종료되어야 가능한 대상이다. 현 단계의 불능화를 되돌려 ‘원상복구’와 함께 원자로 재가동을 시도할 경우 시설 복구와 냉각탑 설치 등에 최소한 1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본다.

검증 문제에 대한 북?미 입장 차이

조) 핵심 사안은 검증 문제에 대해 미국과 북한 사이에 견해 차이가 크다. 검증 프로토콜 핵심은 3가지로 검증대상, 검증방법, 검증주체의 문제가 제기된다. 특히 미국은 샘플 채취, 불시방문 허용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처음부터 이러한 검증 프로토콜에 대해 합의해 줄 의사가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즉, 북한은 처음부터 검증은 또 다른 협상 대상으로, ‘2?13 합의’, ‘10?3 합의’에 임할 당시에도 검증을 수용할 의사는 없었다. 그럼에도 신고서 ‘페이퍼’만 제출하면 미국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할 것으로 기대했을 수 있다. 더욱이 명단 해제는 반드시 얻어내야 한다는 전략적 원칙하에 대미협상을 진전시켰다고 보겠다.
다른 한편 협상과정에서 미국은 신고서 제출 정도로 북한이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 정도는 가능하다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게 한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이를테면 라이스-힐의 양보를 통한 유화적 협상 행태는 북한을 상당히 고무시킨 측면이 있었고, 이에 북한은 부시 행정부가 외교적 성과(legacy)에 연연해하는 모습에서 별다른 양보없이 큰 것을 챙길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을 했을 수 있다.

지난 7월, 북한 통일전선부가 조총련에게 보낸 강연자료 ≪새로운 전환적 국면을 맞이한 조선반도 정세에 대하여≫(「월간조선」 9월호)는 북?미 협상에서 대미전략의 승리를 극구 예찬하면서 상당히 낙관적인 정세 전망을 보여주고 있는 점이 무척 흥미롭다. 이 강연자료는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는 ‘부시의 항복 선언’과 같은 것으로, 김정일의 “영활한 외교술”의 전취물로 치켜세웠다. 그리고 이를 발판으로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 가입뿐만 아니라 외국기업들의 방북 러시에다 미국의 ‘대조선 정책전환’으로 북한의 경제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것이며 한반도를 둘러싼 전반적인 국제질서가 반세기만에 전환되는 역사적 국면으로 내다봤다. 이처럼 ‘나이브’한 정세 인식은 그야말로 북한의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의 한계를 드러내는 증좌이기도 하다.
요 근래 1~2개월 사이 북핵 문제를 둘러싼 미국 조야의 물밑 역학 구도는 다시 딕 체니 부통령이 주도하는 강경 라인이 득세한 시간이었다. 북한의 ‘기만적’인 신고는 그들에게 결코 용납될 수 없으며, 테러명단 해제는 미국의 엄청난 전략적 실책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라이스-힐로 이어지는 대북 협상팀의 역할은 거의 한계에 봉착한 모습이며 부시 대통령마저 명단 해제 문제에 보다 신중한 입장으로 바뀌었다.

북한, 테러지원의 새로운 증거 나타나

최근 북한의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 과정에서 제출된 보고서가 눈길을 끈다. 이번 7월에 미국 의회조사국(CRS)의 래리 닉시 박사는 근년 북한과 테러단체와의 협력에 대해 비교적 상세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는 2004년부터 북한이 헤즈볼라(Hezbollah)와 깊이 협력해 왔으며, 그리고 스리랑카의 타밀 반군(Tamil Tigers), 여기에다 이란의 혁명 수비대(Iranian Revolutionary Guard)와도 지속적인 관계를 가져왔다는 것을 밝혔다. 물론 이런 사실은 미 정보 당국이 이미 파악하고 있었던 사안이지만, 마침 예민한 시기에 이러한 테러와의 협력 내용이 공개되었다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두말 할 여지없이 북한은 여전히 테러지원국가라는 증거를 제시한 셈으로, 그동안 쉬쉬해왔던 협상파를 난처하게 하는 사안인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헤즈볼라 요원들이 북한에서 훈련을 받았고, 또 헤즈볼라의 지하군사시설(터널, 벙커)은 북한의 도움으로 설계?건설되었다는 사실의 폭로는 미국 조야에 부시 행정부의 대북협상 방식에 커다란 회의를 품지 않을 수 없게 했을 것이다.

검증과 관련한 북한과의 근본적인 입장의 차이, 북한의 여전한 테러지원 활동, 대북유화정책을 비판하는 맥케인 공화당 대통령 후보의 선거전 상황 등은 미국 내부에서 북한에 대한 원칙적 입장을 강조하는 견해가 득세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박) 전체적으로 보아, 북한이나 미국이나 2단계 비핵화 협상의 난관을 돌파하고자 하는 정치적 의지가 약화된 것으로 판단된다. 협상 도중에 예상치 못한 난관이 제기되는 것은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걸 양쪽이 모두 정치적 의지를 가지고 돌파해야 한다. ‘2?13 합의’, ‘10?3 합의’ 진행과정에서도 큰 난관들이 있었다. 지금 검증 문제가 등장했는데 검증문제에 관해 미국이나 북한이나 서로 견해차가 클 수 있다는 것을 양쪽 다 예측은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봐야 한다.
문제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북한과 미국이 공히 검증 문제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시간적으로나 정치적 의지의 측면에서나 타협 전망이 밝지 않다. 임기 말 정부인 부시 행정부에게는 이 복잡한 문제를 풀어갈 만한 시간적 여유도 정치적 의지와 자산도 없다. 따라서 원칙적 입장만 제시한 채로 적절한 선에서 봉합상태로 두는 방안도 고려함직하다.
북한은 부시 행정부와 이 문제를 풀어도 얻을 수 있는 이득이 그리 크지 않다고 판단할 수 있다. 시간도 많지 않고, 북한 측이 양보를 하더라도 임기 말 정부인 부시 정부로부터 적절한 반대급부를 받을 수 있다고 기대하기도 어렵다. 북한 입장에서도 원칙적 입장을 선언하고 더 이상 일을 진전시키지 않는 것이 합리적일 수도 있다.

북?미 간 중간결산의 대차대조표

조) 그러면 ‘2?13 합의’, ‘10?3 합의’로부터 지금까지 미국과 북한이 서로 무엇을 양보하고 무엇을 얻었는가

박) 우선 북한부터 살펴보자. 북한은 핵시설 불능화와 신고서 제출로 95만톤의 중유 지원을 약속받았고 그 중 약 40% 가량 지원되었다. 그리고 미국으로부터 50만 톤 식량지원을 약속 받아 그 중에 일부가 북한에 전달되었다. 정치적 측면에서는 2007~2008년 동안 북한은 북?미 협상구조 덕분에 북한의 대외정세가 안정되면서 고립을 극복할 수 있었다. 2007년도에는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개최하여 남북관계를 북한에 유리하게 설정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도 했다. 그리고 중국 및 일본과의 관계도 악화되지 않았다.
부시 행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미국은 북한 핵실험 이후 2007~2008년 동안 동북아 긴장고조를 방지하는 한편 북핵 문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다. 이는 미국 대외정책의 큰 부담을 덜어 준 것이라 볼 수 있다. 한때 부시 행정부가 ‘외교적 유산’을 위해 북핵 문제에 과도하게 양보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이제 임기 말에 당면한 상황에서 부시 정부는 그간 북핵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온데 대해, 이 정도 수준에서 충분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따라서 더 이상 보다 더 많은 외교적 성과를 얻어내기 위해 북한에 양보해야 할 정치적으로 절실한 이유가 없을 수 있다.

조) 이번 북한 외무성 대변인 성명이 국제관계에 미치는 영향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박) 동북아 국제정치 상황을 살펴보면, 지금은 중국, 한국, 일본 미국 사이에 대북 협상책을 놓고 커다란 정책적 분열이 없는 상황이다. 북?미 협상틀이 유지되어왔고, 현재 발생한 검증 문제에 대한 이견 차에 대해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비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이걸 두고 중국과 미국 간의 견해 차가 커진다던지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또한 한?일 관계 중?일 관계도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이 다음 수를 두어야 되는데 북한의 입장은 크게 유리하지 않은 것 같다. 주변국 사이의 정책적 견해가 클 때 북한 운신 공간이 커진다. 차기 미국 정부가 들어서서 또다시 강경정책을 취하지 않는 한, 북한이 주변국의 압력에 의해 검증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협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한 가지는 내년도 북한의 경제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 일단 확보된 대외원조는 내년 초 중반까지 미국 식량 50만 톤뿐이다. 그 이외에 대해서는 북한이 내년도에 확보한 게 없는 실정이다. 또한 최근 정상회담에서 한?중은 외교안보문제에 대한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기로 했고, 미?중 간에도 북한 문제를 두고 상호 협의와 협력이 증가되는 추세이다. 물론 한, 중, 미의 생각이 동일하지는 않겠지만, 내년도에 각 국가별로 대북지원이 이루어진다면, 북핵 문제와 연결하여 한층 조율된 형태를 보일 것으로 판단된다.

봉합국면 속의 북한의 도발적 조치 예상

북한은 2009년 차기 미국 정부 출범 시기에 미국의 관심을 유발하기 위해 조금 도발적인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 26일 외무성 성명은 북한이 불능화 과정 중단 선언을 한 것으로, 앞으로 한 두 차례 조금 더 과격한 성명이 나올 수 있다. 미국의 새 대통령이 확정된 이후인 내년 봄쯤에 북한 문제에 대해 관심을 유도하는 보다 강력하고 구체적인 협박조 성명이 나올 수도 있다.

조) 결론적으로 말해 지금 테러명단 해제를 비롯한 북?미 협상의 진전 여부는 라이스, 힐의 손을 떠난 상태로 여겨진다. 앞으로 9~10월 북?미 협상 문제는 맥케인 선거캠프의 판단과 역할에 달려 있다. 아마 맥케인 캠프는 검증 문제에 결코 유화적 입장을 취하지 않을 것이며, 그러한 유화적 입장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할 것이다. 따라서 북미 핵협상은 북한이 검증 프로토콜에 합의하여 국제적 규범에 부응하는 검증수용 결단을 내리지 않는 한, 현 단계 협상국면이 차기 정부 출범까지 봉합될 가능성이 크다.
2008/08/28 22:55 2008/08/28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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