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나의 교회이력은 아래와 같다.

성덕국민학교(초등학교) 시절 : 교회에서 초코파이와 사탕을 많이 주는 관계로 교회에 출석하였다. 그때의 목사님 생각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중학교, 고등학교 : 본래 신앙과는 상관없는 교회다니기였기에 공부 열심히 한다는 핑계로 교회에 출석하지는 않았다.

대학교 : 2학년때 난 삶의 지표인 인생의 스승을 만나 아 내가 이제 그리스도인이구나 하며 돌이키게 되었다. 그때 함께 활동했던 학생선교단체가 있었는데 IVF 라고 한다. 지금도 당시에 같은 공간에서 활동했던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제일 반가운 일이나 다들 생활속에 숨어있어 직접 만나는 것이 어려워져 간다.

군대가지 반년정도와 제대후 용혜원목사님께서 담임이었던 한돌성결교회를 다녔으며 지금은 친구가 담임 전도사로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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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세희)의 모습이다.

내가 살고 있는 주변지역에서 대부분의 초등학교 학생들은 가난하고 부유하고를 떠나서 이런 풍경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물론 지금은 방학이라서 당분간 이런 모습을 볼 수 없겠지만...

천마초등학교에 다니는 첫째딸은 이웃집 연선이와 자신들을 학교까지 데려다 줄 학원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그 버스를 타지 않으면 직접 걸어가거나 부모가 열심을 내어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어야 한다. 그래서 이 지역 각 부모들이 선택한 것은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 학원차를 이용하여 등교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아이의 자발적 동기와 상관없이 태권도,피아노 등의 교육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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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이상하게 눈이 많이 내린다.

그만큼 얼어 붙어 있는 길바닥의 차가움만큼이나 우리 자신의 마음도 얼어가고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나라의 위대하신 대통령과 여당인 한나라당을 생각하기만 하면 졸도하고 싶어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토로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졸부들의 잔치와 폭력적 입법처리를 더 이상 두눈 뜨고 보기 민망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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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그 인간들은 저 구덩이에 푹 빠지기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4년을 한결같이 기다림으로 일관하게 보낸다면 아마도 지금보다 조금 낳은 세상이 올것이라 한다지만 현실적 대안은 거의 존재하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막 나가다가는 2MB가 분명 후회할 날이 다가 올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삶이란 인간들 사이에 있는 것이고 죽음이란 인간들 사이에 있는 것을 그만두는 것이라 했다. (한나 아렌트, 행동하는 삶중에서)

현재의 상황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하는 것은 죽음의 길이다. 빠듯한 삶의 일부를 공격적 상황으로 만들어 가기 싫기 때문에 선택하는 것이 정치적 이슈에 대하여 무관심하며 그에 따른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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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변하지 않고 하늘에 떠 있는 것이 있다. 태양이다.
우리 머리 위를 비추며 변함 없이 우리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곤한다. 새해 첫날 많은 사람들이 해뜨는 시간에 맞춰 소원을 빌기 위해 산 정상에 오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의 걸음걸이는 항상 갈지자다. 무엇인가 확실한 것을 던져주지 않으면 그냥 마음대로 살아가려 한다.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결정적 장점은 주위를 되돌아 보면서 소외되고 약한 이들을 향한 끊임없는 봉사와 절규가 아닐까?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너무 배부른 생활을 하고 있는지 의심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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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리는 눈은 더럽다.

각종 오염된 물질과 섞여 내리기 때문에 그 외형은 깨끗하고 아이들에게 백색의 순결함을 보여주는데 그 성분은 스스로 더럽혀져 있다. 인간의 욕심이 불러 일으킨 결과라 단정하기에는 세상이 너무도 변했다. 내 몸이 편해진만큼 그 편한 체질에 익숙한 습관을 바꾸기란 쉽지 않게 되었다. 같은 거리를 이동해도 몸을 직접 움직여 가는 수단보다도 동력장치(자동차)를 이용한 운송수단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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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항상 외롭다.

다들 시간에 쫓기듯 바쁘게 일하고 있다. 오랫만에 강남에 나타난 시내버스 안은 크리스마스 트리로 치장되어 있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운전기사님께서 손수 산타할아버지 복장을 입고 운전을 하면서 올라오는 승객을 반갑게 맞이하며 웃어준다는 사실이었다. 무척 힘들고 지친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저 따뜻한 행위의 일부가 특별해 보이는 것은 그 만큼 삶의 각박함 속에 자신을 내던진 결과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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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요즘 도시속에는 웰빙 바람이 불어서인지 돼지에게 녹차를 먹였다는 간판이 눈에 확 트인다. 녹차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있다. 깨끗한 느낌...우리의 입속에 녹아드는 그런 이미지가 외부 간판을 보고 손님을 끌고 있다. 그래서인이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풍겨오는 김치찌게 맛이 좀더 있어 보인다. 사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기분이 음식맛을 좌우한다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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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도를 보낸다.

다 함께 일했던 우리가 생일케익을 앞에 놓고 지나간 한해동안 일어났던 많은 일들을 위해 축배의 커피를 든다. 아쉬움이 많았던 만큼 원망섞인 자조의 말들이 많았던 하루하루를 저 촛불속에 타오르는 촛대위에 다 날려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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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교회가 왜 존재하는지 고민한 적이 많았다. 그래도 한가지 재미를 느꼈던 것은 족구,축구였다. 남자들은 저런 운동을 하며 우정을 쌓아나간다. 우린 아직도 주어진 길에만 만족하고 사는지 세상의 불의함과 부정에 맞서 싸워야 할지 그 길을 선택해야 한다.

부도덕한 정부가 한 나라를 철저하게 망쳐 놓고 있다는 사실에 전율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선한 도덕의 힘과 목숨이 살아 있어 숨쉬는 운동력으로 변화의 물결을 만들어 가야 한다. 때는 늦었다. 그러나 아직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이 추운 겨울 자라나는 아들,딸들의 미래를 걱정하다보니 체화된 마음가짐이다. 내가 집어 넣는 공이 제발 사각안에 골인되는 미래를 꿈꾸어 보면서....
2008/12/28 18:28 2008/12/28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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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교회에 적응하는 것이 힘들었다.?

그동안 학습되어 온 교회의 불가능했던 역사들을 뒤집어 보느라 그랬다. 십자군 전쟁이 일어났을 당시를 그린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 또 고민에 빠지고 말았었다. 그러다 순수한 신앙의 처음으로 돌아가자고 내면을 향해 질문한다. 지금도 교회안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지? 그리고 우리 심장이 예수그리스도의 진정한 제자로 살아가도록 하고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내면의 물음이 흘러나온다. 그런데 교회안에서 흔히 이루어지는 교회설교와 대중기도의 기조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정당한 비판이 은혜속에 묻혀져 속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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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교회사진은 이글과 아무 상관이 없음


이명박 대통령이 장로니까 참고 도와야한다.?

한참 혈기가 왕성할 때 청계산에서 목청껏 외치며 이 땅의 구조적 실패와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한 장로가 당선되기를 바라는 분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기독교인이기때문에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든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중에 훌륭한 사람들 많이 나온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불교도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난 아직도 기독교의 탈을 쓰고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당선된 2MB보다는 노공이산(노무현 전대통령의 닉네임)을 더 신뢰한다.?

요즘 교회의 장로는 성경에 나오는 장로의 모습이 아니다. 장로는 한 교회에서 가장 존경을 받으면서 각자의 직분에 충실한 역할을 해내는 것이었으며 가시밭길을 가는 모습에서 모든 사람들의 신앙의 본이 되는 사람들을 일컬을 수 있는데 지금의 교회는 그런 사람을 장로로 세우지 않는다. 대다수 교회의 장로는 헌금을 많이 할 수 있는 재정적 능력을 겸비한 사람을 장로로 임명하게 된다. 사실 그래서 장로교회는 여러가지 면에서 목사와 장로의 공생관계가 존재할 수 있을수도 있고 분열이 발생할 수도 있다. 더구나 지금과 같이 돈이면 도덕적이냐와 상관없이 다른 이유들이 묻히는 세상에서는 그 힘이 수평적 관계를 가질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도 있다.?

교회내에서 치리의 영역은 이들(목사,장로)에게 맡겨지겠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서로 공조하는 것이 교회 발전을 위해서 좋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여간 장로이기 때문에 한 배를 탄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다수의 정책 실패를 만들어 내고 경제파탄에 내몰리게 하고 있으며 상위 2%를 위해 나머지 국민을 우롱하는 정책으로 일관하는 현 정부와 한나라당을 아직도 지지하고 있다. 이들이 결국 하나님앞에 그리고 역사앞에 큰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장로교 [長老敎, presbyterian]?

장로교란 성경에서 성직자 감독자를 장로로 기록을 하였기에 그렇다.?장로교란 개신교 교파의 이름으로 교회의 감독자를 장로로 하였기에 장로교라 합니다.?또한 장로는 직분의 이름이다.?장로교는 죤칼빈의 신학(神學)과 신앙고백을 중심으로 성립한?그리스도교의 개신교 교파다.?

장로란 《신약성서》에 나타나는 감독(bishop)·장로(elder) 등과 같은 의미로,?장로교는 이러한 장로들에 의해 치리(治理)되는 교회를 말한다.?

창시자는 프랑스의 신학자이자 종교개혁가인 칼빈(Jean Calvin)으로, ?그는 16세기 중엽 성경에서 말하는 장로회제도를 확립하였다.?이후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해 1559년에는 프랑스에서만 2,000여 교회가?장로제도를 채택하였고, 이어 네덜란드·스코틀랜드에서도 많은 장로교회가 생겨났다.?특히 스코틀랜드는 1560년 이후 장로교회를 국교회로 지정해 이후 잉글랜드와?미국으로 전파하는 데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1660년 청교도혁명이 끝나고 왕정 복고가 이루어진 뒤 잉글랜드에서는?세력이 약화되기는 했지만, 세계 장로교의 규범인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과?웨스트민스터요리문답, 헌법·예배지침 등을 청교도혁명 기간에 마련했다는 점에서?장로교 역사상 중요한 시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1706년 필라델피아에서 처음으로 노회가 조직되고,?1789년에는 최초의 장로교 총회가 개최되었다. 그러나 노예문제·신학·전도방법?등의 이견으로 여러 교단이 출현하였는데, 신학·교리 등에는 차이가 없었다.?18세기 이후 미국 장로교회는 아시아·아프리카 등 해외선교에 앞장서?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함으로써 장로교의 세계화에 이바지하였다.?

한국에서는 19세기 말부터 선교가 이루어지기 시작해,?1882년(고종 19) 《누가복음》《요한복음》이 번역 출간되고,?1907년에 대한예수교장로회 독노회가, 1912년에 총회가 창설되었다.?그러나 하나의 행정조직으로 운영되던 한국 장로교회는 광복 이후 신앙과 신학노선 등?여러 갈등 요인으로 인해 분열되기 시작해 2002년 현재 40개가 넘는 교단이 활동하고 있다.

야후 지식 Q&A에서?


좌파세력이 득세하지 않도록 주께서 함께 하여 주소서

기도시간에 한 권사님이 좌파 세력 운운하며 나라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서 저 세력들의 득세를 주께서 막아달라고 기도하신다. 갑자기 귀가 의심스러워진다. 지금 좌파세력이 누구이고 어떤 사람들이란 말인가? 우리나라가 마음대로 좌파세력이 정치권력을 잡았던 적이 있었던 적은 없다. 계속 꼴통 보수들이 주류를 형성해 왔었다. 아니 적어도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이론을 마음껏 논하고 펼친 덕에 커다한 지지 세력을 얻었던 적도 없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좌파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생각해보니 좌파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을 말할 것 같다.?

- 목사의 권위에 충성하지 않고 잘못된 설교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
- 대통령이 거짓말하는데도 그 사람이 장로이므로 국정 운영 철학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
- 각종 국가 정책을 막무가내로 밀어 붙히고 있는데 딴지 거는 사람
- 경제에 대한 책임이 국가에 있다고 인터넷에 진실된 정보를 퍼트리는 사람
- 미국만이 우리의 영원한 우방이자 동맹국이니 통일을 위해 북한과 지속적인 대화를 제안하는 사람
- 북한의 버르장 머리를 고치려고 인도적 차원에서 대북지원도 멈추고 있는데 왜 식량 지원을 하지 않느냐고 주장하는 사람
-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절한 고통속에서 신음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이들을 도우면서 국가에 반기를 들고 있는 사람?등이다.?

아무래도 내가 앉아 있는 자리가 불안하다. 잘못 사실을 전파했다가는 뼈도 못추리고 좌파로 몰릴 것이기 때문이다. 나 좌파요 하고 스스로 외치고 파멸 당할 수도 있다. 난 체게바라 평전을 읽고 있으며 마르크스가 저술한 책도 읽고 있으며 교회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 지지를 하고 있다.?


감히 목사에게 대들다니

한 교회의 목사는 모든 분야에 있어서 전문가다. 아니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 미안하지만 이것 또한 틀린 말이다. 교회의 목사는 가르치는 일에 있어서 전문가일뿐이다. 그런데 교회의 당회장은 항상 피라미드 구조의 최 상위층을 차지하고 있다. 어떤 수평적 관계를 만들어 가기 위해 평신도로 이루어진 교회가 가끔씩 나타나기도 한다. 공동체 중심의 교회의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교회 예배시간의 5할이상은 설교로 채워지기 때문에 그래도 가르치는 역할이 가장 큰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행정권과 운영권, 재정권 및 기타 치리의 영역에서 최고 권위를 발휘하는 것 또한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인생에 있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사람들의 이기심에 도전하는 설교를 한다면 그나마 주의 종으로써 존경할 만하다. 그런데 그 말씀의 권위를 앞세워 자신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향해 저주를 퍼붓는 설교는 용납받지 못할 일이지만 교회안에서 목사의 권위에 복종해야 하므로 용납되곤 한다.?

교회에 들어가면 평안하고 일주일의 삶을 돌아보며 얼마나 이웃을 위해 살았을까 회개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 교회의 옷을 입고 교회 건물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은 항상 무겁다. 오늘도 양복에 넥타이를 둘러메고 잔차타고 다녀왔다. 내가 입은 겉 옷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곤 한다. 아무것도 없는데 먼가 있는 것처럼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교회의 한 단면이 이와 같다. 거지 같은 복장을 하고 교회 입구에 들어 설 수는 없다. 너무나 깨끗한 교회 내부에 있는 분들이 지저분한 내 모습을 용납해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요일마다 고민이 된다. 예수께서는 과연 지금 우리의 내면에 존재하는 누더기같은 모습을 용납하실까??

이래 저래 안티는 힘들다. 소수자로 추락하기 딱 좋은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다. 대중의 지지도 받지 못할 뿐더러 요즘 시대의 공공의 적으로 간주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좌파 세력(=빨갱이)가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회중기도 시간에 들리는 것처럼...


좌익

좌익(左翼) 또는 좌파(左派)는 정치 성향 분포에서 우익의 반대편에 위치한 쪽으로, 사회의 변동을 추구하는 정치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일컫는다. 한편으로는 자유보다는 평등을 중시하는 정치 입장을 말하기도 한다.[1] 비슷한 말로는 진보주의라고 할 수도 있다. 세계적인 기준에서 볼 때에 일반적으로 사회주의, 공산주의와 무정부주의와 여성주의(페미니즘)를 좌익으로 본다.

유래

프랑스 대혁명 당시, 상대적으로 사회변동에 온건한 지롱드당이 의회의 오른쪽 부분에, 급진적인 자코뱅당이 의회의 왼쪽 부분에 위치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좌익'이란 단어는 역사적으로 볼 때, 고정된 의미를 가진 단어가 아니다. 다시 말해, '좌익'은 뜻이 항상 변화하는 단어라는 것이다. 사회의 변동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좌익으로 불리며, 혹은 그렇게 몰린다. 중세 유럽 봉건시대때에는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려는 상인들이 좌익이었으며, 봉건영주에게 맞서 농노들의 권익을 지키려고 한 사람들이 좌익이었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에는 절대군주의 권력에 맞서 프랑스 전체 시민의 권리를 지키려고 한 사람이 좌익이었으며, 이 속에는 지금은 우익으로 분류되는 부르주아지도 포함된다. 21세기 세계에서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성취된 상태에서, 노동운동이 좌익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규정과 정의에 따라 평등보다 자유를 중시하는 자본주의 입장을 우익, 평등을 중시하면 좌익으로 보기도 한다.

대한민국에서의 좌파

한국의 좌파는 1910년대말 상하이에서 고려공산당으로 처음 등장했으며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부터 조선공산당 결성 등으로 활동했다. 1945년 해방 직후 한반도 공산주의 운동은 북한보다 남한에서 활발했으나, 유상 몰수, 유상 분배 성격의 토지개혁으로 일부 소작인이 토지를 소유하는 혜택을 받게 되었고, 남로당 및 조선공산당의 주요 당원이 검거되면서 남한의 좌파는 쇠퇴하였다.[2] 주요 지지 계층과 핵심 활동가의 제거로 쇠퇴하게 된 것이다. 더구나 5·16 군사정변 이후 반공을 국시로 하는 군사 독재정권의 등장으로 남한의 진보적 사회운동은 공산주의나 북한의 지령을 받은 친북 세력으로 매도되거나, 인혁당 사건처럼 국가에 의해 조작된 사건으로 탄압받는 일도 있었다.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조선)에 동조하거나 그 주장과 비슷한 이념을 좌익으로 규정하고,[3] 국가보안법을 통해 이들을 처벌하고 있으며, 좌익이라는 용어보다는 “급진 좌경 세력”이란 용어가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로 인해 좌익이 반드시 공산주의를 뜻하지 않음에도, “좌익” = “공산주의”로 통용되어, “좌익”이란 용어를 스스로 사용하는 단체는 없다. 대신, 어감상 좀 더 부드러운 “좌파”라는 용어가 “좌익”을 대신하여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좌파이념을 '친북한'으로 연결하는 시각이 아직도 대한민국에 많다. 2008년 현재 대표적인 한국의 좌파정당인 민주노동당은 친북 게시물 삭제 거부, 김일성 생가 참배 등 때문에 '친북좌파'로 불리고 있으며, 심지어 기존의 집권 정당과 비슷한 보수주의적 색채의 통합민주당도 북한에 대한 개방적인 정책 때문에 한나라당과 주요 언론으로부터 '친북좌파'로 불리고 있다.
1990년대 들어 소비에트연방해체,옛 동유럽 공산정권들의 붕괴로 공산주의가 붕괴되면서 좌파의 전체적인 세력은 줄어들었으나, 반대로 북한에 동조하지 않는 좌파 운동은 이전보다 더욱 더 활발해졌다. (아래 소개된 '기타 좌파 단체' 참조. 아래 소개된 단체들은 대부분 1990년대 중반 이후 공식적인 활동이 가능해졌다.)

친북 논란
대한민국의 일부 보수주의, 반공주의, 뉴라이트등의 친미 단체 등에서는 북조선에 호의적인 좌파 세력을 친북좌파라는 표현으로 일컫고 있다. 이 명칭은 실제로 좌파 성향인 단체들 뿐만 아니라, 민주노동당, 민주당 등의 정당 단체에도 붙여지고 있다.
어원은 1950년대 한국전쟁을 겪은 군인출신 인사와 반공주의자들 내에서만 사용되던 용어에서 찾을 수 있다.[출처 필요]

친북좌파로 불리는 세력 중에 실제로 북조선에 무비판적이거나,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세력도 일부 있다. 하지만 이 표현은 북조선과 무관한 좌파 단체까지 포괄하거나, 보수 세력에 타협, 협력하지 않는 성향의 사람들을 비하하는 의미로도 쓰인다. 일례로 2008년 대한민국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내용에 대한 반대 시위에서 보수적인 언론단체들은 이 시위가 친북좌파 세력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비슷한 표현으로 주체사상파 또는 주사파가 있다.

대한민국의 대표적 좌파 단체
전통적인 정치형태에서 경제관이나 정치적 관점보다는 반미냐 친미냐, 반북이냐 친북이냐를 놓고 임의적으로 분류되어 좌파 라는 대상의 구체적 설정이 어려웠다. 아래는 보편적으로 좌파로 인정되는 단체와 기관을 열거하였다.
정당 :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한국사회당 등이 좌파 정당으로 꼽힌다. 역사적으로는 죽산 조봉암이 당수로 있던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진보당을 비롯, 박헌영이 총서기로 있던 조선 공산당이 있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해방이후 등장했다가 소멸한 온건 사회민주주의 정당 근로인민당(몽양여운형창당), 사회민주당(여운홍창당),사회당(조소앙 창당) 등도 광의의 의미에서의 좌파 정당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보수주의 우익 단체로부터 한겨레신문, 전대협, 한총련 등이 좌파라 불리고 있지만, 사전적 의미로서 이들을 민족주의 성향의 중도 우파로 분류하기도 한다. 민주당 역시 한국의 우익 단체의 기준으로는 좌파정당로 불리고 있지만, 북한에 대한 평화정책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만 빼면 명백한 우파정당인 한나라당의 정책적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이다.(비정규직 문제, 이라크 전쟁 한국군 파병 문제, 한미 FTA 문제, 재벌 문제 등 참조)
지난 2007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은, 이명박과 한나라당 역시 좌파적이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기타 좌파 운동 단체 : 평등사회로 전진하는 활동가연대(줄임말 '전진'. 민중 민주주의 지향으로 진보신당 창당 참여), 노동자의 힘(줄임말 '노힘'. 노동자 현장투쟁 및 계급정당 건설 지향.), 노동해방실천연대(사회주의적인 계급정당 건설운동), 다함께(반전 反자본주의 노동자 운동단체.)
출처 : 위키피디아

2008/11/23 14:56 2008/11/23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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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울비 2008/11/23 15:5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너무 힘들어하지는 마세요. 모든 변화가 이런 불편함과 고민에서 시작하는 것 아니겠어요.

    • 길목 2008/11/23 18:56 고유주소 고치기

      힘들다기보다는 포기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예배시간 포기, 예수님닮기가 전혀 실행되지 않는 장소로부터의 이탈 등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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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과 손님의 차이

이 글은 최근 교회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에 바탕을 둔 의견의 글이며 전체를 대표하거나 평가하고자 함이 아니며 현재 있는 것을 개인적으로 느껴지는 것을 정리해 두었을 뿐이라는 것을 미리 밝혀둡니다. 교회는 말 그래도 회중이 모이는 곳입니다. 어느 곳이든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면 이끄는 측과 이끌어 지는측의 피지배 계층이라는 이중구도를 갖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이는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고 부인한다 하더라도 구조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해 보면 금방 판단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 = 하나님의 대변자라는 공식)그것이 권위의 속성이며 그 속성에 충실하고자 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러운 구조로 변해가는 것이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공동체속에서 일어납니다.

1. 일의 진행사항에 대한 책임감
자신이 속해 있는 어느 집단에서든 끊임없이 결과를 만들어 내고 좋은 방향을 위한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그런데 그 고민의 장이 축소되어 몇몇 제한된 사람들이 만들어낸 한정적인 공간은 타자처럼 그 정해진 곳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낯선 장소로 변해간다. 일이란 내가 계획해서 주도적으로 처리해 가는 일이 있으며 다른 사람들이 계획해서 따라가는 것이 있다. 전자는 능동적 대처방안을 강구해 나가지만 후자는 수동적 태세를 갖추게 된다. 그래서 후자의 경우는 일의 경중을 따지는 것보다는 일의 과정을 중요시 하게 된다. 구성원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교회는 그 속성상 목회자 또는 사역자가 절대적 권한을 갖게 된다. 이는 예배시간에서도 나타나게 되는데 가령 예배 형식이 바뀌기 전 우리교회의 예배시간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그 시간분포는 그 길이와 상관없이 일상적으로 진행되는 신앙고백과 찬송이 30% 설교 60% 나머지 10% 정도가 광고와 기타 마무리를 위해서 사용된다. 그래서 어찌보면 예배의 상당부분이 설교 듣는 시간으로 생각하게 된다. 아마두 목회자의 경우는 그 권리를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교회의 부흥이 설교를 통한 사람의 변화에 있는 것인지 사람의 변화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위한 것인지는 각 구성원들의 신앙고백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고 봐야한다. 최근 한국교회의 일반적인 모습은 원맨쇼와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자발적인 예배의 중심을 회복하고자 하는 열의는 주도층의 세밀하지 않은 준비에서 잡음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그것으로 인해 점차 이해의 간극은 벌어지게 된다. 이로 인해 적극적 참여를 멀리한 지체들에게는 일에 대한 책임감이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내가 일하지 않고 하나님이 일하게 한다는 진리의 말씀을 차치하고서라도...) 다른 사람의 일이라 여기게 된다. 이때부터는 심각한 내면의 고민을 하게 된다고 보아야 한다.

2. 기도와 행위
사람은 자신이 현재 배우고 살아가고 있는 영역을 뛰어넘어 생각할 수 없다. 즉, 세계화의 흐름속을 쳐다보며 파헤쳐내던 사람은 그 경험된 영역의 틀에서 사역의 방향을 세워가겠지만 이와 달리 자신이 활동하는 반경안에 있는 영역과 경계에서 벗어나지 않았을때는 그 틀을 벗어난  그 이상의 영역에는 접근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정보를 흡수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신앙의 선배들에게 배웠던 것들을 근거로 그 경험담을 중심으로 이야기 하는 것도 어찌보면 신앙의 선배들이 실패했던 경험을 언급하지 않는 것에서 균형을 잃었다고 봐야 한다. 내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실 것에 대한 믿음은 그 행하실 일을 위해 내가 행동하는 행위가 있어야 진정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기도하고 그 기도의 응답을 끊기있게 기다리는 흐름이 많아지면서 그것이 최고의 대안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던 것 같다. 물론 이것이 나쁘기만 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었을 때 사람이 계획해서 실행하는 것은 인위적이고 좋지 않다는 인상을 심어주게 된다. 이는 철저한 준비와 계획을 대안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인 실패감으로 돌아오게 된다. 여러사람이 모여있는 곳에서 각자 다른 은사를 소유하고 사람들이 자신의 장점과 은사를 사용할 수 있는 장이 되도록 만드는 것은 우리가 속한 교회에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고린도 전서 12장 28절) 우리 각자는 어느 위치에 속해 있는 것일까? 말씀을 듣고 깨달을 때 교회에서는 한두사람의 스타가 필요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물론 한국적 사역구조내에서는 한두사람의 중심축이 필요할 수는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민주적 절차에 의한 예배구조를 만드는 것보다는 권위를 가진 몇몇 지체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을 더 편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 자신부터 그렇다.

3. 대안적 공동체인가?
정에 굶주릴수록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나 마음껏 재잘거리고 싶은 것이 사람의 연약함이다. 그것은 내가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 신앙생활, 생활고를 포함하여 삶의 총체적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포함한다. 대안이라는 것은 나쁜 상황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간다는 것을 내포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고 그것을 주도해 나가는 과정에서 몸과 마음을 모아가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하는 것일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주인행세를 하기 위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손님은 언제나 머물다 떠나기때문에 지금 속해있는 공동체가 나가야할 방향과 흐름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도 않으며 그럴 이유도 없다. 그러나 주인은 손님이 떠나가면 그가 다시 올 수 있도록 갖가지 이유와 친절을 베풀기도 해야 한다.  여기서 공동체에 대한 의무와 권리에 대한 태도가 결정되며 공동체는 나의 것이어서 그속에 계속 소속되어 견고한 고리를 형성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란 선택사항으로 이어지게 된다. 교회가 위치한 지리적 여건도 중요하지만 내가 왜 이 교회에 있느냐에 대한 자기 정체성을 만드는 것은 다른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대안적 제시를 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므로 짧은 소견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우리가 공동체를 형성해 나갈때 아래의 것들이 항상 고려되었으면 좋겠다.
 - 교회일의 진행 사항은 가능하면 공개하여 의견 소통의 장소를 마련한다.
 - 설교를 예배의 전부가 아닌 그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도록 시간 안배를 한다.
 - 정해진 시간안에 예배를 드린다.
 - 성도간의 소통이 있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한다.
 - 주일학교 온전한 예배로 따로 분리한다. (사실 2시간 가까이를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은 예배의 산만함을 차치하고서라도 그 부모인 당사자와 아이들이 고려되지 않은 것이다. 이를 위한 대안중의 하나라면 그 아이들이 충분히 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아이들끼리 모아놓으면 그것을 보아줄 한두 사람의 보호자로도 충분할 것이다. 13명의 아이들을 이제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대상이 되어 버렸다.)
2007/02/09 00:06 2007/02/09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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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나

최근에 갖게 된 새로운 생각들을 일단 정리하고 가야 할 것 같다. 난 우리 교회의 권찰이고 친구는 전도사이다. 곧 목사가 될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난 교회의 모든 일정들에 대해서 사역자라는 직분속에 모두 위임을 했다고 생각하며 교회는 내가 관심 써야 할 곳이 아니라는 생각에 그냥 친구에게 전적으로 위임을 했다고 스스로 굳어진 생각을 하게 되었고 교회라는 테두리보다는 좀더 세상속에서의 나 즉, 평소에 내가 관심을 가졌던 사회적 책임과 그 역할에만 집중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오랜 시간동안 대학에서 같이 동역의 길을 걸어왔기에 그리고 그 이후에 교회에서 같은 마음을 품고 있으며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최근 여러번의 대화를 통해 서서히 알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친구가 생각하는 교회의 모습은 확연히 달랐다.

1. 의사결정 과정


교회(敎會)는 말 그대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서로 배우기 위해 존재한다고 본다. 특별히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의 영역(당시예수그리스도가 약한자, 소외된자를 찾아가셨다는 점, 열두 제자들을 그 당시 사회적으로 높은 신분의 고리 타분한 인간들에게서 찾지않았던 것, 사역의 중심이 영혼구원에 있지만 스스로 대속 제물이 되어 타인을 위해 희생했다는 점 등)에서...그런데 이 시대에 진정한 교회는 무엇인가? 우리 교회는 왜 그렇게도 다인 중심적이 아닌 일인 아니 몇명의 사역자라는 누명(?)을 씌어 그 몇사람 중심적인 사역(事役)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운영이 되어가고 있을까? (오해를 풀기 위해서 본인에 대해 말하자면 사실 교회에 15년 이상을 다녔고 교회가 사회를 향해 영혼 구원을 위해 애쓰며 그속에서 참된 은혜와 기쁨을 누렸던 것을 전혀 부정하지 않는다.)

개입(Engagement)하고 싶지 않았던 때가 더 많았다. 왜냐하면 개입한다는 것은 반드시 갈등을 가져오고 갈등이 만들어내는 것은 의견 대립과 시끄러움이다. 그런데 왜 자꾸 말이 시작되기만 하면 교회에 대한 이야기 특히 앞으로의 일들을 생각하며 이야기하게 될까? 그것도 아주 직설적으로 말이다. 아마도 내가 친구이기때문에 여러가지 직설적인 말을 해도 그나마 서로간에 이해를 할 수 있었을 것이라 예측하지만 인간적인 입장에서 생각해 볼때는 기분이 나쁜 것이리라.

의사결정 과정은 여러가지 통로를 통해 만들 수 있다. 현재의 의사결정 과정은 주일 오후예배이후 남아있는 사람들이 함께 기도한 후 마음이 하나가 될때 이루어진다고 했다. 참석자들은 3명의 교회 섬김이 및 청년들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직분을 가지고 있는 집사,권찰 등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왜 교회의 의사 결정 과정에 스스로 참여하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일까? 첫째는 이 교회가 내 교회다라는 의식이 부족하다. 즉, 내가 주인이 아니기에 (더 정확히 말하자면 주께서 나를 이 교회로 부르셨다.) 아무리 애정을 가지려고 해도 관심의 영역에서 밀리게 된다. 둘째로 애들 키우느라 바쁘다. 주일날 오후 늦게까지 시간을 낼 수 있는 그룹은 한정되어 있다. 셋째는 소외감이다. 결국 교회 전체를 바라보고 코디네이트 해주고 있는 담임 교역자와의 의사소통 부재가 가져오는 단절감이 크다하겠다. 어쩌면 의사 결정이라는 것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인간이 계획하고 인간이 결정하는 것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져 있는 분위기에서는 말이다. 그러나 결국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어 일을 계획하고 일을 수행해 나갈때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역에 동참할 수 있는 자발적인 마음이생기는 것이 아닐까?

2. 예배시간

난대학교때 IVF라는 단체에서 활동했다. 그때 좋았던 것은 감성이 강한 내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스스로 받아들였다는 것과 지성으로 그것에 동의했으며 진정한 서로간의 교제속에 사랑을 발견했다는 것에 있다. 예배시간은 바로 그런 것들을 통합해 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예배시간의 대부분은 늘상 설교에 집중된다. 나머지 시간에서 위의 요소들을 끄집어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순서들이다. 그러다 보니 결국 설교를 통해 더 많은 것을 주어야만 하는 시간이 늘어나게 된다. 그래서 12시 30분으로 고정되어 있어야 할 예배시간은 1시 가까이 늘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아진다. 보통 한국 교회들은 예배시간을 1시간안에 다 소화한다.(현대 사회가 진척되어 갈수록 1시간을 넘기면 다들 힘들어 하므로...) 결국 시간에 있어서 효율적인 예배지기들(한백교회는 팀즉 3~4명이 예배시간을 준비한다. 담당자들이 미리 계획할 수 있도록 2개월 단위로 공지한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설교가 길어져 그 내용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약속된 시간내에서 전달해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너무 많은 포인트를 주려다 보면 시간이 길어짐은 당연한 결과다.

3. 고착화 된 관념

보통 교회의 구조를 보면 책상배치가 항상 권위적이다. 실제 권위는 그런 형식적인 것에서 나오지 않는다. 가령 설교 강대상은 한단계 높이 있다. 그리고 나머지 책상,의자들은 강단을 중심으로 일자로 차곡차곡 줄을 지어 서 있는게 보통의 모습이다. 그러다 보니 다수가 설교자 일인에게 집중하는 결과가 도출된다. 설교라는 강의 형식에는 맞을 수 있으나 진정한 코이노니아 즉, 공동체성을 만들어 내기에는 어려운 경직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그러다 보니 강대상은 누구나 올라갈 수 있으며 예수님을 통하여 이제는 제사장의 특권이 부여되었던 구약시대의 하나님께로 나가기 위한 대리자로써의 단일 업종이 사라졌음에도 강대상은 몇몇에 의해 점령당하고 있다. 일반 사람들이 거기 올라가서 설교나 사회를 보는 것은 거의 이상하리만큼 어색하게 느껴지고 두려움이 넘치도록 만들고 있다. 설교자만 특권이 부여된 것으로 이해하게 되는 이유다. 개선이 필요한 점들이 있지만 그동안의 교회 관습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그걸 벗어난다는 것이 어렵다. 교회 전통을 벗어날 경우에는 항상 이단 시비가 일어났었기에...

1부 끝.

(이곳에 적고자 하는 교회에 대한 개념은 모두 사견이며 절대적인 기준도 아니다. 따라서 청중에 따라서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음을 미리 밝혀둔다.)
2006/03/13 06:35 2006/03/13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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