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 관한 글 6개

대학이란 낭만의 섬에서 친구들과 함께 뒹굴던 옛날이 잠시 기억난다.

어느새 난 자유인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명패를 달고 다닐만큼 모든 집회와 성경공부와 수련회에 빠짐없이 출석하였다. 그런것이 싫었다면 죽어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덕분에 나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평가는 신실함이었다. 내 친구는 그것에 조금 덜 민감하여 슈퍼 빤질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하여간 그곳에 구속되어 있었던 것은 삶의 진정한 목적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얻었던 삶의 목적은 를 위한 삶을 살지 않고 을 위해 사는 삶을 살자였다. 그것은 그 이후 나의 인생에 많은 방향타를 건드려왔다.

생각지도 않은 공학전공자가 신학생들이 봐야할 기독교서적을 읽어대며 그 세계관을 정립한다며 설쳐댔던 일은 대학 입학하자마자 도서관의 일반 소설류와 문학책을 섭렵한다는 열정보다 깊었으며 강렬하였다. 그런 열정이 결국은 균형있는 삶을 살지 못하게 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 순간만큼은 행복했다. 아마두 그리스도인이라면 한번쯤은 경험하지 않았을까?

삶을 그런 관조적인 자세와 넉넉한 마음같은 타자의 삶을 살기 시작했던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아마두 내 앞에 있지 않으나 늘 마음의 고향이 되고 있는 부모님들의 빈자리 때문이다. 잘 나가던 고3때 아버님은 사고로 인해 돌아가셨으며 그 나이때 병원 영안실에서 어른들이 쥐어 준 지폐 몇장을 천국여비로 쓰라고 싸늘한 주검위에 넣어주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내 마음속의 아버지는 생활고를 극복하느라 그 어려운 노동을 감내하기 위해 늘상 술로 힘든 인생을 달랬던 분이시다. 어린시절부터 고3때까지 그런 아버지는 친구같은 존재라기보다는 사랑하지만 마음을 터놓지 못하고 다만 그분의 심정을 이해하는 정도였다. 반면에 어머니는 무척 자상하시기도 하고 유머가 있어 늘상 삶의 활력소가 되었다. 시골에서 인천 주안에 정착하기까지 그렇게 오랜 삶을 사신 것도 아니었다. 위암말기증세로 몇년을 고생하시다 아버님을 따라 하나님 나라로 가셨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가족의 의미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말과 함께..
웬지 혈육은 언제 만나도 헤어져 살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함께 살아간다는 것과 어떠한 잘못과 원망이 있더라도 그들의 상황이 어려울때는 측은함이 자연스럽게 마음속에 베이게 한다.
아마도 안타깝다는 것은 그만큼 가족과 같은 따스함이 묻어 있을때만 나타날 수 있는 감정이 아닐까 한다.

자신의 삶과 인생에 아무런 개입이 없다면 굳이 안타까와 할 이유도 걱정이 되어줄 이유도 없을 것이다. 우리의 존재가 그렇듯 어울어짐을 요구하며 함께 하고자 하는 집단공동체를 형성하고자 하는 마음도 다 관심과 사랑을 응집하고자 하는 열망에 기인한다고 본다.

겨울은 삶을 건조하고 춥게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을 찾고자 하며 끊임없이 노력할 때 어두웠던 내면의 불편함들이 사라지지 않을까? 시화방조제가 만들어 놓은 길목을 따라 갯벌을 걸었던 우리 다섯 식구들은 아직 끈끈함으로 사랑함으로 함께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누가 뭐라해도 누군가를 향하여 내면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면 그것으로 가족애는 살아있는 것이 아닐까? 받은 상처가 아무리 깊고 크더라도 나를 향한 그분의 한결같은 용서앞에는 고개를 숙여야 하기때문이다.
2007/02/03 02:45 2007/02/03 02:45
글 걸기 주소 : http://jis.pe.kr/road/?/trackback/237

덧글을 달아 주세요

[로그인][오픈아이디란?]

수확

지난달 중순 청평 장인어른댁에 갔던 일이 있었다. 무, 배추가 얼기전 수확을 마무리 하자고 하셨던 지난 기억들이 되살아 나 그때를 생각해 본다.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기실 재미있었던 것은 그동안 정성스레 가꾸었던 농작물을 수확하는 기쁨이 있었다는 것이다. 비록 직접 키우는데 동참하지 않았지만 가을이 되면 재미있게 동참할 수 있었던 노동이 있었다. 작년에는 토란 수확에 흠뻑 마음을 빼았겼었는데 올해는 배추다.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칼들고 니어커 끌고 배추잎사귀를 바라보며 기쁨을 느낀다. 크득크득 그저 입을 벌려 웃을 뿐이다. 진우는 그 작은 몸집을 가지고 커다란 수레를 끌고 싶다한다. 종일 피곤에 지친다는 말은 노동의 가치를 알고 그일에 즐거이 동참했을때는 생기지 않는다. 무엇에든지 억지로 한 것은 금방 티가 나게 되어 있다. 기차길옆 작은 밭에서 생산되었던 무우와 배추는 직접 키운것에 목말라 먹지 못한 우리집과 이웃으로 금방 배분되어 나간다. 그저 나눠 주는 것이 소유하고 있는 것보다 좋은 것이다.

한쪽 구덩이에 파 놓아 묻어 놓았던 무, 열어보니 빗물이 가득 고여 있다. 전부 다시 끄집어 내어 새로운 장소에 옮기는데 먹었던 점심때문에 허리가 굽혀지지 않았다. 너무 많이 먹어서...
아이들은 그저 흙을 파고 흙냄새를 맡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그냥 그런 삶이 좋은 것이다. 뛰어놀데 없고 차조심해야 하는 도시에서는 맛볼 수 없는 구수함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 역시 오랫만에 이런 삶을 누려본다. 가슴이 답답하고 머무를 곳 없어 방황하는 내 삶의 한 단면을 애써 숨기고 싶으나 땅은 그런 마음까지고 안아주며 나를 맞아주는 것 같다. 점점 귀농하고 싶은 마음도 있으나 도시생활의 단맛-편안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지금까지 버티어 나간다.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며 삶의 미래를 걱정하며 한점 두려움을 벗어던지지 못한 삶을 살아감은 나뿐만이 아닌 많은 사람들의 고민이 아닐까 한다.

연말이다.

내가 수확했던 것을 나누어주는 것에 너무도 인색해 왔다는 자책감이 든다. 며칠전 친구들끼리 작당하여 한 아이를 돕기 위해 돌렸던 편지글에서 오랫만에 느껴지는 인쇄용이 아닌 자필 볼펜글씨와 친히 마련한 몇푼 안되는 선물과 함께 했던 풋풋한 대학시절의 끈을 유지하기위한 노력을 하다보니 죽어가던 감성이 되살아 난다. 수고로이 연락하고 애써 끈을 이어가는 연대의 정신과 서로 짐을 나누어 짐으로써 공동의 선을 추구해 나가는 작은 끈이 그저 고맙다 느껴질 뿐이었다. 내 스스로가 살아있음을 느껴가는 것은 그런 것들이 많아지는 것이었다.

우리주위에 내 가까이에 아직도 열지 않은 낯선 얼굴들이 많이 있다. 한번도 인사하지 못하는 척박한 땅에 내가 떨쳐 나가고픈 작은 행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허락된다면 감사하련다. 그리스도가 태어난 성탄절 교회가 싫어진다 말하던 많은 사람들,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기에 불러온 거부감들, 기초부터 새로이 다지는 연습을 하려면 아직 할일이 많은 밤이다.
2006/12/17 21:38 2006/12/17 21:38
글 걸기 주소 : http://jis.pe.kr/road/?/trackback/230

덧글을 달아 주세요

  1. grace 2006/12/18 10:2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이제 세희랑 진우가 한 몫을 하네. ^^

    • 주인장 2006/12/18 23:19 고유주소 고치기

      그러게 말야. 이제 녀석들도 거의 스스로 놀줄도 알고 무리지어 놀줄도 알게 되었단 말야 어느새...^^;;

  2. 백곰 2006/12/20 07:1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가을 걷이를 한 논과 들판은 마음을 허전하게 합니다. 온통 갈색 풍이죠. 논에 볏집더미를 많이 세우더군요. 왜 그렇게 모으는가 했더니 나중에 버섯 재배나 볏짚으로 음식을 데우는 데 필요하다고 합니다. 요새 농약을 많이 쳐서, 환경농법에 의한 볏짚은 인기가 좋다고 합니다. 농약을 친 볏짚은 먹거리나 어떤 땔감으로 음식조리하는 데 많은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무우'를 요새 많이 먹습니다. 무우는 음식에 나오는 불순물이나 면으로 된 음식의 독성을 잠재우는 특수 효소가 있다고 합니다. 수확한 무우를 나누어주고 삽시다. 혼자만 즐기지만 말고요. 장샘이 모시는 신도 '나눔과 성김의 봉사'를 강조하시지 않았습니까? 아침 부터 왜 이러지?

    • 주인장 2006/12/21 00:00 고유주소 고치기

      ㅋㅋ 역시 음식철학의 대가처럼 날카로운 분석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작은 댓글 하나에도 생각지 못했던 부분들을 찔러 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무가 그렇게 좋은줄 다시 돌아봅니다. 그런데 어쩌죠. 제 가까이에 있는 분들에게는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수확한 무는 내년을 기약해야 할 듯합니다. 소진되어 간직하고 있는 물량이 너무 적어서요. ^^;;

[로그인][오픈아이디란?]

구속됨의 깊이

사랑이란 자신속에 갖혀있던 것을 오픈공간에 내어 놓는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면 그 내어놓는 것의 목적은 무엇인가? 도와주는 것에 목숨을 내건 사람들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 주위에 내 주위에 찾아보려니 그런 험난한 사람 찾기 힘들다. 그리고 애써 왜면해온 지하철 노숙자들만 생각난다. 그런데 억지로 찾아 애쓰는 것은 나를 위함일까 그들을 위함일까?

아이들이 밖에 신나게 나갔다. 귤과 바나나 사러...그것으로 가족의 행복은 시작되었고 채워진다. 세희가 묻는다 지금 쓰고 있는 것이 무슨 내용이냐고..."응 언젠가 커서 읽어보라고" 오늘 대전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몇명이서 다은이 돕고 있는데 편지를 돌리고 있다고 내가 받아서 다음 친구한테 전해주어야 한다. 등기로 보낸단다. 아직두 이런 작은 일을 실천하고 있다는 것에 경의를 표할뿐이다. 사랑에 구속됨은 이런것일까?
2006/12/10 23:02 2006/12/10 23:02
글 걸기 주소 : http://jis.pe.kr/road/?/trackback/225

덧글을 달아 주세요

[로그인][오픈아이디란?]

의영아


우리집 막내둥이 의영이.
뒤돌아 보면 의영이에 대한 기록이 거의 전무하다. 그래서인지 괜스레 그녀 앞에만 서면 미안함이 몰려오기도 한다. 이제 거의 14개월째이지만 의영이가 어린이집에 처음 발걸음을 한 것은 수개월 전부터세 아이들에게 시달리던 엄마가 무척 힘들어지면서 부터였다. 그때부터 의영인 충분한 모유 수유를 하지 못했기도 했지만 늘상 엄마랑 떨어져 사는 것에 길들여 져야했다. 그래서인지 다른 애들보다 많이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많아진다.

지난 시절동안 계속 마음속을 맴돌고 있는 광복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진정한 자유와 평안이 함께하는 그 순간 나의 목숨이 죽어지내도 좋을 일들에 마음을 맡기게 될때 내 영혼과 육체는 진정으로 되살아 날 것이다. 그래도 의영이를 보면 볼수록 그리고 세희,진우가 커가는 모습을 바라보니 그동안 마음에  담지 못했던 생활고가 밀려오는 것 같아 미리 두려움에 떤다. 내가 이렇게 약한 사람인줄 알게 된게 그리 오래 되지 않는다. 그리고 적절한 거리에서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살게 될줄은 예상 못했지만 이제는 그런 것이 자연스러운 것을 보니 보통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느껴진다. 내가 보통의 사람들 속에 속해 있으므로...

오늘은 자전거를 탈 일이 많았다. 사무실에서 퇴근하자마다 당산역에 주차해놓았던 잔차를 타고 광명시까지 거의 2시간 정도를 내몰았고 모임이 끝난 후 다시 40분정도를 달려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짧은 시간동안 출퇴근 하듯이 탔던 날보다는 몸이 가벼웠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것이 분명하다. 몸이 쉬고 싶다고 말할 때 과감하게 떨쳐내는 방법을 잊어버린지 너무 오래다.

삶은 무엇일까? 계속 그날을 덜어내는 삶을 살고 있다. 그날을 풍성히 채워가기보다는 마음을 비우는 날이 많아진다. 그만큼 일과 삶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는 것일까? 여전히 스카이페를 테스트 하느라 온라인속에서 나를 불러내는 전샘의 노익장에 박수를 보낸다. 그 살아있는 열정과 그 살아있는 정보통신 마인드는 늘상 보잘것없는 좁은 내 속에 생명을 불어 넣는다. 잊혀져 가는 한 사람으로 사장되기보다는 기억되는 한사람으로 남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는 요즘이다. 과연 정보화 마인드는 언제 생겨나서 활개를 칠까? 이미 대한민국은 전부 변했는데... FTA 협상차 방문한 미국대표단의 한마디가 맴돈다. [한국의 온라인 교육시장에는 큰 관심이 있다.] 그만큼 대한민국은 많이도 매력덩어리로 변한 영역이 존재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정보화를 통한 교육시장 즉, 온라인 교육과 ICT 영역이라 추측해본다. 점차적으로 성장해가고는 있지만 그만큼 이속에서 다양한 국제이해교육의 요소들이 생기는데 너무 오프라인에서 행해지는 일들만 중요시 되다보니 비가시적인 이영역은 교육의 가시적 성과를 눈으로 볼 수 없듯이 오랫동안 기다려야 그 결과를 그나마 예측해 볼 수 있는가 보다. 이번주 내로는 북한의 미사일발사와 인도의 미사일 발사가 닮은꼴인데 서로 비교될정도로 차이점이 존재하는데 그점에 대해서 자료조사를 하련다. 물론 대략적인 것은 예측가능하지만...
2006/07/12 00:47 2006/07/12 00:47
보람말 : , ,
글 걸기 주소 : http://jis.pe.kr/road/?/trackback/167

덧글을 달아 주세요

  1. grace 2006/07/13 22:2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오빠가 솔직해지는 것 같아서 보기 좋네.
    자신이 약한 사람이란걸 깨닫는 것도 힘들고, 인정하는 것도 힘든 것 같아.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그렇지?
    주일학교에서 세희랑 진우가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 꾸준한 출석률이거든. ^^ 얼마전에 경미가 진우한테 '진우는 가족이 누가있어?' 그랬더니 '엄마랑, 아빠랑, 세희 누나랑, 의영이랑, 은혜 이모랑' 했다더라. ^^ 아이궁.. 고마워라.
    요즘 주일학교 교사하면서 세희, 진우한테 미움사게 생겼어. 난 주로 규율잡고 혼내는 선생님이고 경미는 애들 달래주는 선생님이거든. -_-; 주중에 세희랑 진우가 은혜이모 밉다고 하면 오빠가 잘 좀 말해줘. 다 너희 잘되라고 하는 거라고. 난감해..
    의영이가 주일학교 들어올 때는 내가 어떤 모습일까??

[로그인][오픈아이디란?]

남산골 한옥마을

예전에 로렌스 서렌드라와 함께 충무로역쪽을 걸어가다가 로렌스가 물었다. 저기 "Do you know that place?" "Yes, just name of that" "I have visited at there!" ㅎㅎ 외국인인 그는 몇번 그곳을 가 보았다고 했건만 맨날 지나치는 난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관광이 아니면 이런 명소를 가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다란 생각이 어렴풋이 머리속에 맴돌았다. 쉽게 말하면 제주도에 살면서 한라산 한번 가보지 못했다는 말을 종종 들었던 것처럼...

남산골 한옥마을 : 정말로 이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관광을 이유로 드나들고 있다라는 것을 짐작만 하고 있을 뿐이다. 2월 12일(주일) 정월 대보름이다. 이날 전통 한마당이 벌어진다는 소식에 아이들 세명(세희,진우,의영)을 데리고 이곳에 왔다.

남산골 한옥마을에 대한 간단한 소개
3, 4호선 충무로역 하차, 3번출구(중대 부속 병원과 매일경제신문사 사잇길로 200m)
0013, 0211, 104, 105, 263, 371, 400, 604, 7011번 등 이용. 퇴계로3가 극동빌딩 앞 하차.



남산 북쪽 기슭 한옥마을이 들어선 필동(筆洞) 지역은 조선시대에는 흐르는 계곡과 천우각이 있어서 여름철 피서를 겸한 놀이터로 이름있던 곳이다. 또한 청학이 노닐었다고 하여 청학동으로도 불렸다.
청학동은 신선이 사는 곳으로 불리울 만큼 경관(景觀)이 아름다워 한양에서 가장 경치 좋은 삼청동(三淸洞), 인왕동(仁王洞), 쌍계동(雙溪洞), 백운동(白雲洞)과 더불어 한양 5동(漢陽五洞)으로 손꼽히던 곳이다.

이곳의 옛 정취(情趣)를 되살려 시민들에게 제공하기 위하여 골짜기를 만들고 물을 흐르게 하였으며, 정자(亭子)를 짓고, 나무를 심어 전통정원(傳統庭園)을 조성하였다. 7,934㎡(2,400평) 대지 위에 서울의 팔대가(八大家) 중 하나였던 박영효 가옥(朴泳孝 家屋 )으로부터 일반평민의 집에 이르기까지 전통한옥(傳統韓屋) 다섯 채를 옮겨놓았다.

이들 한옥들에는 집의 규모와 살았던 사람의 신분에 걸맞는 가구(家具)들을 예스럽게 배치하여 선조들의 생활모습을 직접 보고 알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전통공예관(傳統工藝館)에는 무형문화재(無形文化財)로 지정된 기능보유자들의 작품과 관광기념상품을 늘 전시하고 있다.


(주)화인ENT 에서 주관하고 서울시가 주최하는 보름달에 빌어보는 소원성취 한마당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집주위를 한바퀴 뱅돌며 지신밟기를 하고 있는 농악대의 흥겨운 음감에 주위에 있던 몇분들은 흥이나 어깨춤을 덜썩덜썩 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애 세명을 데리고 와다갔다 하는 애기들 아빠가 불쌍했는지...지나던 어떤 이름모를 아주머니께서 다가오시더니 한번 같이 찍으라고 하신다. 어설픈 내 표정과 피곤함은 아마두 그때문에 묻어 나온 것이 아닌가 한다.






시계를 보니 벌써 여섯시가 다가온다.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은 계속 이곳에 머물것을 주장한다. 그렇지만 나두 이제 어지간히 추움을 타기 시작했고, 의영이도 등뒤에서 편안히 잠자다가 이제 깰 시간이 되었다. 그래서 아이들의 주장을 살짝 무시하며 이제 가자고 하며 손잡고 내려온다. 오는동안 세희는 계속 투덜투덜한다. 그 달집 태우는 장면을 꼭 보고 싶은 모양이다. 정문쪽에 호떡을 파는 곳이 있었는데 그거 먹고 가자는 것으로 마음을 달랜다. 그 호떡은 생산되는 시간이 너무 길어 15분을 기다려서야 겨우 먹을 수 있었다. 마침 의영이가 꼼지락 거리기도 하고 배고플 시간이 되기도 해서 빨리 발걸음을 재촉한다.
아이들은 추운 것보다 신난것을 중시한다. 왜 이런 단순한 진리를 어른들은 잃어버리며 살아가고 있을까?
2006/02/13 06:41 2006/02/13 06:41
글 걸기 주소 : http://jis.pe.kr/road/?/trackback/117

덧글을 달아 주세요

  1. kissmog 2006/02/13 14:54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햐,,추운데 재밌었겠어요? 맨 마지막의 글이 마음에 콱!...
    와 닿는군요. 아이들은 추운것보다 신난것을 좋아한다.
    어른들의 눈높이에서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은 좀 그렇네요..
    아이 셋을 데리고 야외를 나간다... 휴.. 정말 쉬운일은
    아닐거란 생각이 들지만... 아빠이니까 가능하겠군요

  2. 익수 2006/02/13 21:4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후후 그럼. 애 아빠가 되면 때론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애야 애들한테 사랑받을 수 있어. 뭐 애들 세명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겠지만 암튼 열심히 후손을 낳고 키우는데 열중해 보기를 기도할께.

  3. grace 2006/02/14 23:12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얼~ 다녀왔구만. 마지막에 세희 사진이 압권인데.. 실망이 얼굴 가득하다. -_-;;
    그래도 위에 사진들 보니까 재밌게 놀았나봐. 세희랑 진우랑 신났다. ^^
    애들은 엄마, 아빠가 이렇게 때마다 어딜 데려가주고 싶어하고 좋은걸 보여주고 싶어하고 맛있는걸 먹여주고 싶어한다는 걸 알까?
    울 아빤 보름 때 날 어디에 데려갔을까?

  4. Chester 2006/02/18 15:2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음 전 버스타고 맨날 이 옆을 지나다니면서도 뭐하는동네인지 몰랐는뎅..... ㅠ.ㅠ 아름다운 가정의 모습을 보니 저도 행복해지네요. 제 아들놈한테도 이렇게 해주어야 할텐데...

  5. 익수 2006/02/20 23:24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매일 지나치는 길을 걸어가거나 여유를 갖고 살다보면 가끔씩 보이지 않았던 동네이름과 간판도 보이곤 합니다. 바쁘지만 그게 여유를 갖고 사는 길이겠죠?

[로그인][오픈아이디란?]

그녀들은 대치중

아내와 세희는 늘상 대치한다. 물론 말로...

토요일 어린이집 발표회가 있었다. 그런데 대기하는 동안 잠시 졸았던 세희는 일어나자마자 모든 것이 귀찮은 듯 신경질내며 앞에 나갔을때 아무것도 않하다가 끝날때쯤되어서야 겨우 조금 움직였다는 후문...

요즘 아내와 첫째딸(7살)의 말싸움은 그 누가 이길것이라 장담을 못할 정도로 첨예하다. 엄마가 성질내니 나두 성질내는 것처럼 둘은 일상 다반사에서 말을 아끼지(?) 않는다. 그 모습을 진우가 포착해 낸 사진이다. ㅋㅋ 진우도 이제 사진 찍을 줄 아는군...^^;;
2006/02/12 21:12 2006/02/12 21:12
보람말 : ,
글 걸기 주소 : http://jis.pe.kr/road/?/trackback/116

덧글을 달아 주세요

[로그인][오픈아이디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