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현대사 (KBS) : 큰 하나를 위하여-문익환
동영상 - http://www.kbs.co.kr/end_program/1tv/sisa/manhistory/vod/1328116_968.html
방송일시: 2004년 9월 10일(금) 밤10시
연출: 양승동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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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일시: 2004년 9월 10일(금) 밤10시
연출: 양승동 PD
기획의도 : 문익환(1918년-1994년)은 목사로서 재야의 민주화 운동가이자 통일운동가였다. 그는 민주화 운동과 통일 운동은 동전의 양면으로써 동시에 추구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에 대해 이중적 느낌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의 재야 민주화 운동과 인권 운동에 대해서는 호감을 갖지만, 지난 89년 그의 방북 사건에 대해서는 의혹을 갖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의 방북과 김일성을 포옹한 행위는 돌출적인 행동이었나? 그의 민주화 및 인권 운동과 말년의 파격적인 통일운동은 어떤 함수 관계를 갖고 있었나이번 주 인물현대사에서는 문익환 목사를 통해, 우리 사회 일각의 그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의 실체와 함께 그의 진면목을 들여다 봄으로써, 우리 자신의 역사 인식을 되돌아 보는 계기를 마련해 본다.
문익환 목사 72세(1989 3월 25일) 때 평양 방문

자세히 보기
1. 자유는 생각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행위를 통해서 온다 (디트리히 본 회퍼)
2. 서산대사 "야설" / 저자가 이양연이라고 하는 곳도 있음. 이양연(李亮淵, 1771-1853)은 정조, 순조 연간의 문신으로 본관이 전주이고 광평대군의 후손
3. 정경모 "찟겨진 산하"
이원호 (기독교인 / 당시 국회부의장 비서실장)
이부영 (당시 전민련 의장) -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거지
4. 정해구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5. 문동환 (전 평민당 대표)
6. 윤동주 (소학교 친구)
7. 장준하 (사상계 발행인 / 친구)
8. "3.1민주구국선언"사건
명동성당 3.1절 기념미사에서 윤보선, 함석헌, 김대중, 함세웅 신부 등 「민주구국선언」발표, 긴급조치 철폐, 구속인사 석방, 언론·출판·집회의 자유보장, 국회기능 회복, 사법부 독립 등 5개항 요구. 정부는 3.1 구국선언을 정부전복사건이라고 발표하고 종교의 자유를 악용한 정치활동이라고 규정.
9. 이총각 (당시 동일방직 노동해고자)
10. 고재식 (전 한신대학교 총장)
11. 분신자살 : 이동수 (서울대), 이한열(6.29선언 촉발)
12. 상고이유서
"이 민족은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남자와 여자로, 도시민과 농민으로, 고용주와 피고용자로 등등 사회학적으로 분열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크게 보아서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갈려져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 사회의 주종관계를 일소하는 일을 민주화 작업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그대로 지배자-피지배자로 분열되어 있는 민족을 통일하는 일입니다." - 문익환 『방북 관련 재판 상고이유서』 부분
13. 1988년 7.7선언 (노태우)
14.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안치환 작사 작곡)
서럽다 뉘 말하는가 흐르는 강물을
꿈이라 뉘 말하는가 되살아오는 세월을
가슴에 맺힌 한들이 일어나 하늘을 보네
빛나는 그 눈 속에 순결한 눈물 흐르네
가네 가네 서러운 넋들이 가네
가네 가네 한많은 세월이 가네
마른 잎 다시 살아나 푸르른 하늘을 보네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이 강산은 푸르러
가네 가네 서러운 넋들이 가네
가네 가네 한많은 세월이 가네
마른 잎 다시 살아나 푸르른 하늘을 보네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이 강산은 푸르러
15. 하나가 되는 것은 더욱 커지는 일이다.
16. 정경모 (세계 1989년 7월호 / 무엇이 죄인가 평양방문 비망록)
17.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 한겨레 논설 고문)
역사는 현실주의자가 아닌 이상주의자가 바꾼다.
18. 1991년 (강경대 열사 최루탄 맞고 죽음)
19. 임수경 방북 (1989년)

20. 89년 4.2 공동성명(북의 조평통과의 합의문) : 출처 (통일맞이 - http://www.moon.or.kr / 자료실)
문익환 목사님께서 방북하셨을 때 김일성 주석과 만나셨습니다. 민족과 통일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한 의견을 주고받았고 그 결과로 남과 북이 함께 통일로 나아가기 위한 지표가될 합의문을 이끌어 내셨습니다. 6.15 남북공동선언의 뿌리이기도 한 [4.2남북공동성명]입니다.
2. 서산대사 "야설" / 저자가 이양연이라고 하는 곳도 있음. 이양연(李亮淵, 1771-1853)은 정조, 순조 연간의 문신으로 본관이 전주이고 광평대군의 후손
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 (불수호란행)
今日我行跡 (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 (수작후인정)
눈을 밟으며 들길을 갈 때
모름지기 함부로 걷지 말아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취는
마침내 後代 사람의 길이 되리니
不須胡亂行 (불수호란행)
今日我行跡 (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 (수작후인정)
눈을 밟으며 들길을 갈 때
모름지기 함부로 걷지 말아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취는
마침내 後代 사람의 길이 되리니
3. 정경모 "찟겨진 산하"
이원호 (기독교인 / 당시 국회부의장 비서실장)
이부영 (당시 전민련 의장) -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거지
4. 정해구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5. 문동환 (전 평민당 대표)
6. 윤동주 (소학교 친구)
7. 장준하 (사상계 발행인 / 친구)
8. "3.1민주구국선언"사건
명동성당 3.1절 기념미사에서 윤보선, 함석헌, 김대중, 함세웅 신부 등 「민주구국선언」발표, 긴급조치 철폐, 구속인사 석방, 언론·출판·집회의 자유보장, 국회기능 회복, 사법부 독립 등 5개항 요구. 정부는 3.1 구국선언을 정부전복사건이라고 발표하고 종교의 자유를 악용한 정치활동이라고 규정.
< 관련자>
문익환(목사)
윤보선(전대통령)
함석헌(씨알의 소리 대표)
김대중(정치인)
문동환(전 한신대교수)
이문영(전 고대교수)
문정현(신부)
함세웅(신부)
신현봉(신부)
윤반웅(목사)
정일형(신민당 국회의원)
이태영(변호사)
이우정(전 서울여대교수)
서남동(전 연대교수) 등
당시 구속된 분들
문익환 (58.목사)
함세웅 (35.신부)
문동환 (55.목사)
김대중 (51.무직)
이태영 (49.무직)
서남동 (48.무직)
안병무 (54.무직)
신현봉 (46.신부)
이해동 (42.목사)
윤반웅 (66.목사)
문정현 (36.신부)
문익환(목사)
윤보선(전대통령)
함석헌(씨알의 소리 대표)
김대중(정치인)
문동환(전 한신대교수)
이문영(전 고대교수)
문정현(신부)
함세웅(신부)
신현봉(신부)
윤반웅(목사)
정일형(신민당 국회의원)
이태영(변호사)
이우정(전 서울여대교수)
서남동(전 연대교수) 등
당시 구속된 분들
문익환 (58.목사)
함세웅 (35.신부)
문동환 (55.목사)
김대중 (51.무직)
이태영 (49.무직)
서남동 (48.무직)
안병무 (54.무직)
신현봉 (46.신부)
이해동 (42.목사)
윤반웅 (66.목사)
문정현 (36.신부)
9. 이총각 (당시 동일방직 노동해고자)
10. 고재식 (전 한신대학교 총장)
11. 분신자살 : 이동수 (서울대), 이한열(6.29선언 촉발)
12. 상고이유서
"이 민족은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남자와 여자로, 도시민과 농민으로, 고용주와 피고용자로 등등 사회학적으로 분열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크게 보아서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갈려져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 사회의 주종관계를 일소하는 일을 민주화 작업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그대로 지배자-피지배자로 분열되어 있는 민족을 통일하는 일입니다." - 문익환 『방북 관련 재판 상고이유서』 부분
전태일 아닌 것들아
다들 물러가거라
눈물 아닌 것 아픔 아닌 것 절망 아닌 것
모든 허접쓰레기들아 모든 거짓들아
당장 물러들 가거라
온 강산이 한바탕 큰 울음 터뜨리게
- 문익환 시 "전태일" 부분
다들 물러가거라
눈물 아닌 것 아픔 아닌 것 절망 아닌 것
모든 허접쓰레기들아 모든 거짓들아
당장 물러들 가거라
온 강산이 한바탕 큰 울음 터뜨리게
- 문익환 시 "전태일" 부분
나는 통일을 보았네
벗들이여!
이런 꿈은 어떻겠소?
155마일 휴전선을
해뜨는 동해바다 쪽으로 거슬러 오르다가
푸른 바다가 보이는 산정에 다달아
국군의 피로 뒤범벅이 되었던 북녘 땅 한 삽
공산군의 살이 썩은 남녘 땅 한 삽씩 떠서
합장을 지내는 꿈,
그 무덤은 우리 5천만 겨레의 순례지가 되겠지.
그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다 보면
사팔뜨기가 된 우리의 눈들이 제대로 돌아
산이 산으로, 내가 내로, 하늘이 하늘로,
나무가 나무로, 새가 새로, 짐승이 짐승으로
사람이 사람으로 제대로 보이는
어처구니없는 꿈 말이외다.
-문익환 시 “꿈을 비는 마음” 부분
벗들이여!
이런 꿈은 어떻겠소?
155마일 휴전선을
해뜨는 동해바다 쪽으로 거슬러 오르다가
푸른 바다가 보이는 산정에 다달아
국군의 피로 뒤범벅이 되었던 북녘 땅 한 삽
공산군의 살이 썩은 남녘 땅 한 삽씩 떠서
합장을 지내는 꿈,
그 무덤은 우리 5천만 겨레의 순례지가 되겠지.
그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다 보면
사팔뜨기가 된 우리의 눈들이 제대로 돌아
산이 산으로, 내가 내로, 하늘이 하늘로,
나무가 나무로, 새가 새로, 짐승이 짐승으로
사람이 사람으로 제대로 보이는
어처구니없는 꿈 말이외다.
-문익환 시 “꿈을 비는 마음” 부분
13. 1988년 7.7선언 (노태우)
1988. 7. 7에 발표한 '민족 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특별 선언'으로 일컬어지는 7 7 선언의 6개 항은 다음과 같다.
* 남북 동포 간의 상호 교류 및 해외 동포의 남북 자유 왕래
* 이산 가족들 간의 생사 주소 확인 서신 상호 방문 적극 주선
* 남북 교역 문호 개방, 남북 간 교역을 민족 내부 거래로 간주
* 비군사적 물자에 대한 우리 우방들의 교역 불반대
* 남북간 소모적인 경쟁 지양하고 국제 사회에서 협력
* 북한과 미 일 관계 개선을 협조하고 우리는 공산권과의 관계 개선 추진
* 남북 동포 간의 상호 교류 및 해외 동포의 남북 자유 왕래
* 이산 가족들 간의 생사 주소 확인 서신 상호 방문 적극 주선
* 남북 교역 문호 개방, 남북 간 교역을 민족 내부 거래로 간주
* 비군사적 물자에 대한 우리 우방들의 교역 불반대
* 남북간 소모적인 경쟁 지양하고 국제 사회에서 협력
* 북한과 미 일 관계 개선을 협조하고 우리는 공산권과의 관계 개선 추진
14.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안치환 작사 작곡)
강변물빛 마른잎 다시 살아나
서럽다 뉘 말하는가 흐르는 강물을
꿈이라 뉘 말하는가 되살아오는 세월을
가슴에 맺힌 한들이 일어나 하늘을 보네
빛나는 그 눈 속에 순결한 눈물 흐르네
가네 가네 서러운 넋들이 가네
가네 가네 한많은 세월이 가네
마른 잎 다시 살아나 푸르른 하늘을 보네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이 강산은 푸르러
가네 가네 서러운 넋들이 가네
가네 가네 한많은 세월이 가네
마른 잎 다시 살아나 푸르른 하늘을 보네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이 강산은 푸르러
15. 하나가 되는 것은 더욱 커지는 일이다.
16. 정경모 (세계 1989년 7월호 / 무엇이 죄인가 평양방문 비망록)
17.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 한겨레 논설 고문)
역사는 현실주의자가 아닌 이상주의자가 바꾼다.
18. 1991년 (강경대 열사 최루탄 맞고 죽음)
19. 임수경 방북 (1989년)

20. 89년 4.2 공동성명(북의 조평통과의 합의문) : 출처 (통일맞이 - http://www.moon.or.kr / 자료실)
문익환 목사님께서 방북하셨을 때 김일성 주석과 만나셨습니다. 민족과 통일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한 의견을 주고받았고 그 결과로 남과 북이 함께 통일로 나아가기 위한 지표가될 합의문을 이끌어 내셨습니다. 6.15 남북공동선언의 뿌리이기도 한 [4.2남북공동성명]입니다.
[4.2 남북 공동 성명서]
남 조선의 문익환목사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초청을 받고 민족통일문제를 협의하며 아울러 현재 침체상태에 있는 남과 북의 당국 대 당국, 국회 대 국회의 통일협상 및 민간차원의 모든 접촉을 활성화하는데 기여할 목적으로 3월 25일부터 4월 3일까지 평양을 방문하였다.
방문기간 문익환목사는 김일성주석의 접견을 받고 서로가 민족분단의 비극을 극복하는 열의에 넘친 분위기 속에서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었다. 문익환목사와 그 일행은 체류기간 평양봉수교회에서 거행된 뜻깊은 부활절 예배를 봄으로써 민족의 부활을 말해주는 통일에 대한 확신을 더욱 견고히 굳힐 수 있었으며 또한 장충카톨릭교회미사에 참가하여 조선기독교도연맹 중앙위원회, 조선천주교인협회 중앙위원회 교직자들과 담화를 나눔으로써 기독교신앙을 통한 상호간의 우의를 더욱 돈독히 하였다.
또한 그 옛날 서산대사가 기거하던 묘향산 보현사를 방문하여 그곳 스님들과 대화를 나눔으로써 문화적 정신적인 공통성과 외세에 대항하여 민족적 긍지를 지키려는 같은 민족으로서의 동질성을 재확인하였다. 또한 문익환목사 일행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관계자들과 동포애에 넘치는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민족통일문제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였다.
이 회담에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측에서 허담 위원장과 부위원장들인 정준기, 윤기복,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의장 여연구,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 안병수가 참가하였으며 남에서는 문익환목사와 정경모가 참가하였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측은 문익환목사와 그 일행의 평양방문을 따뜻하게 환영하였으며 특히 문익환목사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이념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오직 나라와 민족이 하나로 되는 길을 찾으려는 일념에서 평양방문의 용단을 내린데 대하여 경의를 표하였다. 회담에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측은 남에서나 북에서나 조국통일의 열망이 높아가고 전반적인 국제정세도 우리 민족의 평화통일에 유리하게 변화되고 있는 현 정세에 맞게 전민족적인 통일노력을 배가하여야 하겠다는 것이 강조되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측은 우리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한 노력에서 무엇보다도 남과 북 사이의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스러운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긴급한 과제라는 것을 지적하면서 팀 스피리트 합동군사연습의 도발성과 위험성을 강조하였으며 이와 같은 상황아래서 전쟁의 위험을 제거하자면 남북고위급 정치군사회담을 실현하여 정치군사적 대결부터 해소하여야 할 것이며 조,미,한 사이의 3자회담을 열어 조,미 사이의 현 정전협정을 보다 영구적인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며 아울러 남북사이에 불가침선언을 채택하는 것이 긴요하다는 점을 천명하였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측은 민족의 통일은 남과 북의 현 제도를 그대로 두고 쌍방이 서로 상대방의 제도를 용인하며 자치제에 근거하여 두 지역 정부가 하나의 연방공화국을 창립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연방제통일방안에 대한 민족적 합의를 위하여 지도급 인사들의 정치협상이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조국평 화통일위원회측은 민족의 통일을 촉진시키기 위하여서는 쌍방의 대화를 당국자가 독점하는 일이 없어 각계각층의 민간급 대화가 활발히 전개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남한당국이 주장하는 대화창구일원화 를 배격하였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측은 우리 나라를 영구히 둘로 분열시키려는 두개 한국 조작책동과 두개 한국 을 추가하는 교차접촉 , 교차승인 , 유엔동시가입을 견결히 반대배격하였다.
조국 평화통일위원회측은 현 시점에서 남북사이에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남과 북의 통일을 지향하는 모든 세력이 순수한 민족적 입장에서 굳게 단결하여 나갈데 대한 의지를 피력하였다. 문익환목사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측의 평양방문 초청과 따뜻한 환대에 사의를 표하였으며 자신의 평양방문이 북의 통일의지를 직접 확인하며 남북의 화해와 교류와 접촉의 길을 트는 계기가 되리라는 희망을 표시하였다. 문익환목사는 나라의 분열을 더이상 끌어서는 안되며 가까운 시일안에 민족이 하나가 되는 역사의 전환점을 맞이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문익환목사는 민주는 민중의 부활이고 통일은 민족의 부활이며 민중과 민족의 부활은 자주 없이는 성취될 수 없다고 하면서 자주, 민주, 통일이 일체임을 천명하였다. 문익환목사는 남북사이의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대결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치군사문제와 함께 교류문제도 병행하여 해결해야 하며 남북교류가 민족의 단합을 도모하는데 있어서 그 의의가 크다는 것을 강조하고 이산가족문제와 경제교류문제 등 여러 부문에 걸친 회담과 교류가 활발하게 추진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문익환목사는 대화창구의 일원화 를 반대하는 한편 민간차원의 대화가 활발히 진행됨으로써만 남북당국과 양측 국회사이의 대화도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는 견해를 표명하였다.
문익환목사는 남북이 연방제로 나아가는 것은 두 지역간의 현실적 차이와 민족통일의 절박성에 비추어 필연적인 역사의 요청임을 지적하면서 연방국가의 단계적 창설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긴급한 과제라는 의견을 제기하였다. 문익환목사는 남북이 소의와 아집을 버리고 대승적 입장에서 서로 단합함으로써 유구한 역사를 지닌 민족의 슬기와 존엄을 과시하고 통일위업을 성취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쌍방은 솔직한 의견이 충분히 개진되고 이해와 신뢰의 분위기가 조성된 가운데서 나라의 자주적 평화통일과 관련된 원칙적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1. 쌍방은 상치되는 이해와 주장을 넘어 7.4남북공동성명에서 확인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에 기초하여 통일문제를 해결하여야 한다는 것을 재확인한다.
2. 쌍방은 어떠한 경우에도 분열의 지속을 목적으로 하는 두개 한국 정책을 반대하고 끊임없이 하나의 민족 그리고 통일된 나라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한다.
3. 쌍방은 정치군사회담을 추진시켜 남북사이의 정치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는 동시에 이산가족문제와 다방면에 걸친 교류와 접촉을 실현하도록 적극 노력한다.
4. 쌍방은 누가 누구를 먹거나 누가 누구에게 먹히우지 않고 일방이 타방을 압도하거나 타방에게 압도당하지 않는 공존의 원칙에서 연방제방식으로 통일하는 것이 우리 민족이 선택해야 할 필연적이고 합리적인 통일방도가 되며 그 구체적인 실현방도로서는 단꺼번에 할 수도 있고 점차적으로 할 수도 있다는 점에 견해의 일치를 보았다.
5. 쌍방은 팀 스피리트 합동군사연습은 남북대화와 평화 및 통일의 성취와는 양립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측은 팀 스피리트 합동군사연습기간에는 대화가 장애를 받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였으며 문익환목사는 올해 팀 스피리트 합동군사연습기간 북에서 취한 유연한 대화자세를 평가하였다.
6. 문익환목사는 교차승인 , 교차접촉 에 대한 북의 거부적 입장과 통일의지를 확인하고 조국평화통일위원회측은 문익환목사가 주장하는 남북교류와 점진적 연방제 통일제안이 두개 한국 을 지향하는 것이 아님을 확인하고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7. 쌍방은 우리 민족이 굳게 단결해야 할 필요성과 그 절박성을 통감하면서 돈있는 사람은 돈을 내고 힘있는 사람은 힘을 내며 지식 있는 사람은 지식을 내어 나라의 통일위업실현에 적극 이바지할데 대한 공동의 염원을 표시하였다.
8. 조국평화통일위원회측은 전민련의 범민족대회소집제안을 지지하고 문익환목사는 제13차 세계청년학생 평양축전에 참가하려는 남한청년학생들을 지지하며 쌍방은 그 실현을 위하여 계속 인내성 있게 노력한다.
9. 쌍방은 이상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합의가 금후 남북사이의 다각적인 공식대화에서 협의의 기초가 될 수 있고 가교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인정하고 그 실천대책을 남북당국과 제 정당, 단체들에 건의한다.
남 북인민들의 거세찬 통일열망을 바탕으로 하여 실현된 문익환목사의 이번 평양방문은 우리 나라 민족통일운동사에 기록될 획기적인 쾌거이다. 쌍방은 문익환목사의 뜻깊은 평양방문이 통일이냐 영구분열이냐의 갈림길에 있는 우리 민족을 올바른 애국의 길로 이끄는 고무적인 힘이 될 것이며 남과 북사이에 쌓여온 불신과 반목을 해소하고 사상과 신앙, 제도의 차이를 초월한 민족적 단합을 촉진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며 남북대화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쌍방의 접촉과 교류의 길을 터놓는 선구적 역할을 다하게 될 것임을 확인한다. 쌍방은 문익환목사의 평양방문이 회담당사자들 사이에 다같이 유익하였다고 인정하면서 쌍방의 합의의 결과는 나라의 통일을 염원하는 민족적 양심을 지닌 남과 북의 그 어느 누구에게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리라는 확신을 표명한다.
1989년 4월 2일
평양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고문 문익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허담
남 조선의 문익환목사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초청을 받고 민족통일문제를 협의하며 아울러 현재 침체상태에 있는 남과 북의 당국 대 당국, 국회 대 국회의 통일협상 및 민간차원의 모든 접촉을 활성화하는데 기여할 목적으로 3월 25일부터 4월 3일까지 평양을 방문하였다.
방문기간 문익환목사는 김일성주석의 접견을 받고 서로가 민족분단의 비극을 극복하는 열의에 넘친 분위기 속에서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었다. 문익환목사와 그 일행은 체류기간 평양봉수교회에서 거행된 뜻깊은 부활절 예배를 봄으로써 민족의 부활을 말해주는 통일에 대한 확신을 더욱 견고히 굳힐 수 있었으며 또한 장충카톨릭교회미사에 참가하여 조선기독교도연맹 중앙위원회, 조선천주교인협회 중앙위원회 교직자들과 담화를 나눔으로써 기독교신앙을 통한 상호간의 우의를 더욱 돈독히 하였다.
또한 그 옛날 서산대사가 기거하던 묘향산 보현사를 방문하여 그곳 스님들과 대화를 나눔으로써 문화적 정신적인 공통성과 외세에 대항하여 민족적 긍지를 지키려는 같은 민족으로서의 동질성을 재확인하였다. 또한 문익환목사 일행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관계자들과 동포애에 넘치는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민족통일문제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였다.
이 회담에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측에서 허담 위원장과 부위원장들인 정준기, 윤기복,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의장 여연구,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 안병수가 참가하였으며 남에서는 문익환목사와 정경모가 참가하였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측은 문익환목사와 그 일행의 평양방문을 따뜻하게 환영하였으며 특히 문익환목사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이념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오직 나라와 민족이 하나로 되는 길을 찾으려는 일념에서 평양방문의 용단을 내린데 대하여 경의를 표하였다. 회담에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측은 남에서나 북에서나 조국통일의 열망이 높아가고 전반적인 국제정세도 우리 민족의 평화통일에 유리하게 변화되고 있는 현 정세에 맞게 전민족적인 통일노력을 배가하여야 하겠다는 것이 강조되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측은 우리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한 노력에서 무엇보다도 남과 북 사이의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스러운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긴급한 과제라는 것을 지적하면서 팀 스피리트 합동군사연습의 도발성과 위험성을 강조하였으며 이와 같은 상황아래서 전쟁의 위험을 제거하자면 남북고위급 정치군사회담을 실현하여 정치군사적 대결부터 해소하여야 할 것이며 조,미,한 사이의 3자회담을 열어 조,미 사이의 현 정전협정을 보다 영구적인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며 아울러 남북사이에 불가침선언을 채택하는 것이 긴요하다는 점을 천명하였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측은 민족의 통일은 남과 북의 현 제도를 그대로 두고 쌍방이 서로 상대방의 제도를 용인하며 자치제에 근거하여 두 지역 정부가 하나의 연방공화국을 창립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연방제통일방안에 대한 민족적 합의를 위하여 지도급 인사들의 정치협상이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조국평 화통일위원회측은 민족의 통일을 촉진시키기 위하여서는 쌍방의 대화를 당국자가 독점하는 일이 없어 각계각층의 민간급 대화가 활발히 전개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남한당국이 주장하는 대화창구일원화 를 배격하였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측은 우리 나라를 영구히 둘로 분열시키려는 두개 한국 조작책동과 두개 한국 을 추가하는 교차접촉 , 교차승인 , 유엔동시가입을 견결히 반대배격하였다.
조국 평화통일위원회측은 현 시점에서 남북사이에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남과 북의 통일을 지향하는 모든 세력이 순수한 민족적 입장에서 굳게 단결하여 나갈데 대한 의지를 피력하였다. 문익환목사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측의 평양방문 초청과 따뜻한 환대에 사의를 표하였으며 자신의 평양방문이 북의 통일의지를 직접 확인하며 남북의 화해와 교류와 접촉의 길을 트는 계기가 되리라는 희망을 표시하였다. 문익환목사는 나라의 분열을 더이상 끌어서는 안되며 가까운 시일안에 민족이 하나가 되는 역사의 전환점을 맞이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문익환목사는 민주는 민중의 부활이고 통일은 민족의 부활이며 민중과 민족의 부활은 자주 없이는 성취될 수 없다고 하면서 자주, 민주, 통일이 일체임을 천명하였다. 문익환목사는 남북사이의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대결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치군사문제와 함께 교류문제도 병행하여 해결해야 하며 남북교류가 민족의 단합을 도모하는데 있어서 그 의의가 크다는 것을 강조하고 이산가족문제와 경제교류문제 등 여러 부문에 걸친 회담과 교류가 활발하게 추진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문익환목사는 대화창구의 일원화 를 반대하는 한편 민간차원의 대화가 활발히 진행됨으로써만 남북당국과 양측 국회사이의 대화도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는 견해를 표명하였다.
문익환목사는 남북이 연방제로 나아가는 것은 두 지역간의 현실적 차이와 민족통일의 절박성에 비추어 필연적인 역사의 요청임을 지적하면서 연방국가의 단계적 창설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긴급한 과제라는 의견을 제기하였다. 문익환목사는 남북이 소의와 아집을 버리고 대승적 입장에서 서로 단합함으로써 유구한 역사를 지닌 민족의 슬기와 존엄을 과시하고 통일위업을 성취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쌍방은 솔직한 의견이 충분히 개진되고 이해와 신뢰의 분위기가 조성된 가운데서 나라의 자주적 평화통일과 관련된 원칙적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1. 쌍방은 상치되는 이해와 주장을 넘어 7.4남북공동성명에서 확인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에 기초하여 통일문제를 해결하여야 한다는 것을 재확인한다.
2. 쌍방은 어떠한 경우에도 분열의 지속을 목적으로 하는 두개 한국 정책을 반대하고 끊임없이 하나의 민족 그리고 통일된 나라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한다.
3. 쌍방은 정치군사회담을 추진시켜 남북사이의 정치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는 동시에 이산가족문제와 다방면에 걸친 교류와 접촉을 실현하도록 적극 노력한다.
4. 쌍방은 누가 누구를 먹거나 누가 누구에게 먹히우지 않고 일방이 타방을 압도하거나 타방에게 압도당하지 않는 공존의 원칙에서 연방제방식으로 통일하는 것이 우리 민족이 선택해야 할 필연적이고 합리적인 통일방도가 되며 그 구체적인 실현방도로서는 단꺼번에 할 수도 있고 점차적으로 할 수도 있다는 점에 견해의 일치를 보았다.
5. 쌍방은 팀 스피리트 합동군사연습은 남북대화와 평화 및 통일의 성취와는 양립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측은 팀 스피리트 합동군사연습기간에는 대화가 장애를 받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였으며 문익환목사는 올해 팀 스피리트 합동군사연습기간 북에서 취한 유연한 대화자세를 평가하였다.
6. 문익환목사는 교차승인 , 교차접촉 에 대한 북의 거부적 입장과 통일의지를 확인하고 조국평화통일위원회측은 문익환목사가 주장하는 남북교류와 점진적 연방제 통일제안이 두개 한국 을 지향하는 것이 아님을 확인하고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7. 쌍방은 우리 민족이 굳게 단결해야 할 필요성과 그 절박성을 통감하면서 돈있는 사람은 돈을 내고 힘있는 사람은 힘을 내며 지식 있는 사람은 지식을 내어 나라의 통일위업실현에 적극 이바지할데 대한 공동의 염원을 표시하였다.
8. 조국평화통일위원회측은 전민련의 범민족대회소집제안을 지지하고 문익환목사는 제13차 세계청년학생 평양축전에 참가하려는 남한청년학생들을 지지하며 쌍방은 그 실현을 위하여 계속 인내성 있게 노력한다.
9. 쌍방은 이상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합의가 금후 남북사이의 다각적인 공식대화에서 협의의 기초가 될 수 있고 가교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인정하고 그 실천대책을 남북당국과 제 정당, 단체들에 건의한다.
남 북인민들의 거세찬 통일열망을 바탕으로 하여 실현된 문익환목사의 이번 평양방문은 우리 나라 민족통일운동사에 기록될 획기적인 쾌거이다. 쌍방은 문익환목사의 뜻깊은 평양방문이 통일이냐 영구분열이냐의 갈림길에 있는 우리 민족을 올바른 애국의 길로 이끄는 고무적인 힘이 될 것이며 남과 북사이에 쌓여온 불신과 반목을 해소하고 사상과 신앙, 제도의 차이를 초월한 민족적 단합을 촉진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며 남북대화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쌍방의 접촉과 교류의 길을 터놓는 선구적 역할을 다하게 될 것임을 확인한다. 쌍방은 문익환목사의 평양방문이 회담당사자들 사이에 다같이 유익하였다고 인정하면서 쌍방의 합의의 결과는 나라의 통일을 염원하는 민족적 양심을 지닌 남과 북의 그 어느 누구에게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리라는 확신을 표명한다.
1989년 4월 2일
평양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고문 문익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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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수오빠~
오빠가 초대장 보내신 건가요?
아직도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냥 돌아다니며 여러 사람 싸이트에 들어가보면 되는 건지..
아님 주의빛 교회 싸이트가 따로 있나? ^^a
암튼 오빠 블로그 들어와 보니 여러 정보가 많네요...
종종 들어와 볼께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현항아 오랫만...초대장은 교회 홈페이지에서 보낸 것이란다. 주의빛교회 홈피를 블로그 방식으로 바꾼 것은 좀더 효과적인 글쓰기 툴이 내장되어 있기때문이었고, 팀블로그 개념은 한사람만 컨텐츠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여러사람이 공동작업을 하는 그런 방식이다.
암튼 종종 시스템을 업그레이드 시켜놓기는 하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어 한번 가이드라인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종종 해본다.^^; 글구 반갑다. 현항아.
아뒤랑 빔일번호 알려줘~~~ -ㅇ-
초청장 보냈소. 한메일로 근데 한메일은 종종 스팸함으로 자주 들어가던데 확인해 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