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옥배'에 관한 글 1개

그리스도의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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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기독교란 무엇인가? 기독교의 한국내에서의 역사성 및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여러번 받았다. 그전에는 그것이 무엇이라고 확언했었는데 이제는 그것이 잘 안된다. 아마두 수많은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시각들이 현재의 대안없는 변론의 상황을 만든 것이라 여겨졌다. IVP를 통해 접했던 예전의 수많은 책들이 지금은 아무 쓸모없을 정도로 먼지만 쌓여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서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 그 당시에는 지성을 겸비한다는 명목아래 지식을 쌓기 위한 도구였다고 회고하는 바 이제는 왜 그런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점을 들고 책을 읽어 나간다.

과연 실제로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를 위하여 '세상을 헛된 것으로 여기며', 십자가로만 '자랑하고, 그것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는가? ' 기독교 신앙이 과연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에 대한 믿음'이라는 말로 정확하게 요약될 수 있는가? 그는 자신에게 이렇게 묻는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이렇게 집중하는 것은 무슨 근거에서인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Page 28 본문중에서...)

니이체는 행복이란 '권력이 증가한다는 느낌'으로 규정한다. 그와 관계없이 그리스도인들은 결성(Integrity)을 위하여 수치스러운 일을 선포해야 하며 부끄러운 것을 자랑으로 여겨야 하는 것에 대한 의문에 대한 대답으로 대신한다. 

이슬람교의 가장 안타까운 특징 중 하나는, 하나님의 중요한 선지자가 그렇게도 수치스러운 종말을 맞이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선언하면서 십자가를 거부하는 것이다. 코란은 죄를 담당하는 구주의 죽음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Page 56)

복음의 핵심은 구약성경에서 예언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며 그 분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나의 죄를 대속하신 구세주로 받아들이는데에 있다. 영국 캠브리지에서의 CICCU 와 SCM의 역사에 대한 짧은 소개글을 읽으면서 91년도 리더훈련시 있었던 6개대(서울대,건국대,이화여대,고려대, 경희대, 광운대) 사태를 되돌아 본다. 당시 IVF의 사회참여에 대한 요구들이 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IVF에서 보내온 소리지를 통해 지면으로 돌아보는 그 당시의 상황을 현장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은 피부로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그리스도인으로 내 스스로가 생각하는 현재의 시각과 관점들은 그 당시 리더수련회 참석을 거부했던 동 시대의 6개대 학생들과 많이 다르지 않은데 말이다. 난 편안하게도 그 당시 정규 리더 코스인 LTC를 무사히 마쳤고 안전하게(?) 캠퍼스 학생리더로써 섬기게 되었다. 아마도 사회참여에 대해 그렇게 넓은 시각을 열수 있는 기회도 없었을 뿐 아니라 신앙의 눈으로 보는 사회운동에 대한 신학적 기틀도 캠퍼스내에서는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했던 그 시절 그 사건들은 현재의 나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아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분명한 것은 복음의 핵심과 그 중심에 서 있을때 흔들림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그 당시의 무모하기까지 짝이 없었던 용감함들은 그리 틀렸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지금은 그것조차도 고민하며 살아가는 것이 힘들기까지 한 것을 보면 말이다. 이사야 53장의 말씀으로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을 대신해야 할 것 같다. 그토록 고민하는 이 시대의 역사성과 그리스도인으로써 가져야 할 한줌의 양심이 꿈틀거리는 것은 아마도 당신앞에 고결한 삶을 살겠다고 맹세하는 순간 각인되었던 신앙의 결실이지 않을까 싶다.

특별히 로잔언약중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이란 부분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고 있다. 수없이 읽어보아도 동감이 가는 것은 그만큼 고민의 결과가 비슷하였기 때문인것 같다. 로잔언약 전문 :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 (Christian social responsibility)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창조자이신 동시에 심판자이심을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 사회 어디서나 정의와 화해를 구현하시고 인간을 모든 종류의 압박에서 해방시키려는 하나님의 권념에 참여하여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에 인종, 종교, 피부빛, 문화, 계급, 성 또는 연령의 구별없이 모든 사람이 타고난 존엄성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사람은 서로 존경받고 섬김을 받아야 하며 누구나 착취당해서는 안된다. 이 점을 우리는 등한시하여 왔고, 또는 왕왕 전도와 사회 참여가 서로 상반되는 것으로 잘못 생각한데 대하여 참회한다. 사람과의 화해가 곧 하나님과의 화해가 아니며, 사회 행동이 곧 전도는 아니며, 정치적 해방이 곧 구원은 아닐지라도, 전도와 사회-정치적 참여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의무의 두가지 부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인정한다.
왜냐하면 이 두가지는 다같이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우리의 교리, 우리 이웃을 위한 우리의 사랑,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순종의 필수적 표현들이기 때문이다. 구원의 메시지는 모든 종류의 소외와 압박과 차별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를 내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과 부정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이것을 공박하는 일을 무서워해서는 안된다.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그의 나라에 다시 태어난다(중생함을 받는다). 따라서 그들은 불의한 세상 속에서도 그 나라의 의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전파하기에 힘써야 한다. 우리가 주장하는 구원은 우리의 개인적 그리고 사회적 책임을 총체적으로 수행하도록 우리를 변화시켜는 것이어야 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행17:26, 31, 창18:35, 사1:17, 시465:7, 창1:26, 27, 약3:9, 레19:18, 눅6:27, 35, 약2:14-26, 요3:3, 5, 마5:20, 6:33, 고후3:18, 약2:20)

이사야 제 53 장
1 우리의 1)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2)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3)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9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4)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10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11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12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2007/02/19 13:52 2007/02/19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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