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에 관한 글 1개

대학이란 낭만의 섬에서 친구들과 함께 뒹굴던 옛날이 잠시 기억난다.

어느새 난 자유인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명패를 달고 다닐만큼 모든 집회와 성경공부와 수련회에 빠짐없이 출석하였다. 그런것이 싫었다면 죽어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덕분에 나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평가는 신실함이었다. 내 친구는 그것에 조금 덜 민감하여 슈퍼 빤질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하여간 그곳에 구속되어 있었던 것은 삶의 진정한 목적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얻었던 삶의 목적은 를 위한 삶을 살지 않고 을 위해 사는 삶을 살자였다. 그것은 그 이후 나의 인생에 많은 방향타를 건드려왔다.

생각지도 않은 공학전공자가 신학생들이 봐야할 기독교서적을 읽어대며 그 세계관을 정립한다며 설쳐댔던 일은 대학 입학하자마자 도서관의 일반 소설류와 문학책을 섭렵한다는 열정보다 깊었으며 강렬하였다. 그런 열정이 결국은 균형있는 삶을 살지 못하게 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 순간만큼은 행복했다. 아마두 그리스도인이라면 한번쯤은 경험하지 않았을까?

삶을 그런 관조적인 자세와 넉넉한 마음같은 타자의 삶을 살기 시작했던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아마두 내 앞에 있지 않으나 늘 마음의 고향이 되고 있는 부모님들의 빈자리 때문이다. 잘 나가던 고3때 아버님은 사고로 인해 돌아가셨으며 그 나이때 병원 영안실에서 어른들이 쥐어 준 지폐 몇장을 천국여비로 쓰라고 싸늘한 주검위에 넣어주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내 마음속의 아버지는 생활고를 극복하느라 그 어려운 노동을 감내하기 위해 늘상 술로 힘든 인생을 달랬던 분이시다. 어린시절부터 고3때까지 그런 아버지는 친구같은 존재라기보다는 사랑하지만 마음을 터놓지 못하고 다만 그분의 심정을 이해하는 정도였다. 반면에 어머니는 무척 자상하시기도 하고 유머가 있어 늘상 삶의 활력소가 되었다. 시골에서 인천 주안에 정착하기까지 그렇게 오랜 삶을 사신 것도 아니었다. 위암말기증세로 몇년을 고생하시다 아버님을 따라 하나님 나라로 가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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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의미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말과 함께..
웬지 혈육은 언제 만나도 헤어져 살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함께 살아간다는 것과 어떠한 잘못과 원망이 있더라도 그들의 상황이 어려울때는 측은함이 자연스럽게 마음속에 베이게 한다.
아마도 안타깝다는 것은 그만큼 가족과 같은 따스함이 묻어 있을때만 나타날 수 있는 감정이 아닐까 한다.

자신의 삶과 인생에 아무런 개입이 없다면 굳이 안타까와 할 이유도 걱정이 되어줄 이유도 없을 것이다. 우리의 존재가 그렇듯 어울어짐을 요구하며 함께 하고자 하는 집단공동체를 형성하고자 하는 마음도 다 관심과 사랑을 응집하고자 하는 열망에 기인한다고 본다.

겨울은 삶을 건조하고 춥게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을 찾고자 하며 끊임없이 노력할 때 어두웠던 내면의 불편함들이 사라지지 않을까? 시화방조제가 만들어 놓은 길목을 따라 갯벌을 걸었던 우리 다섯 식구들은 아직 끈끈함으로 사랑함으로 함께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누가 뭐라해도 누군가를 향하여 내면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면 그것으로 가족애는 살아있는 것이 아닐까? 받은 상처가 아무리 깊고 크더라도 나를 향한 그분의 한결같은 용서앞에는 고개를 숙여야 하기때문이다.
2007/02/03 02:45 2007/02/03 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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