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초상화'에 관한 글 18개

진우와 잔차를 타고 개봉역을 향한다.

오늘 함께 만나기로 했던 대학교 친구네 집에서 약속을 하였다. 지금은 안양에서 살고 있어서 난 아침을 지나 점심을 향한 시각 양 어깨에 카메라와 삼각대 그리고 등에는 노트북을 짊어지고 사진 전문가인(?) 아들을 대동하고 출발한다.

멀게만 느껴졌던 거리의 지명만큼은 멀지 않은 곳이다. 여전히 사람들은 이곳 저곳을 향해 삶의 발걸음을 제촉하며 무엇인지 모를 바쁜 일정을 소화해 내고 있는 듯 보인다. 역 곳곳에서 들리는 소리는 바쁘게 뒤엉킨 발자국 소리와 분주하게 굴러가는 기차와 전철의 바퀴가 만들어 내는 불협화음이다.

흘러가는 시냇물을 좇아 부드러움을 간직하던 옛 시절의 추억이 그리워지는 것은 메마른 동심을 일깨우기도 어려운 도시생활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목 놓아 외치던 절대자를 향한 절규가 끊어진지 오래며 세상이 각박하다고 하소연 할 때 미미한 반응들은 희망보다는 절망을 낳는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희망이 없는 족속들은 돈없고 힘없고 권력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 속에서 희망을 찾는다. 사람이 살아가야 할 목적과 가치가 존재하는 한 놓지 못할 동심의 세계를 발견하듯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고 위로한다.
보석 악세사리 찍는 것은 이번이 두번째 이다. 처음에 옷에 매칭되는 모습을 취하며 열심히 소품을 옮겨다니며 찍어 보았으나 신통치 않다. 아무래도 보석은 옷감과는 어울리지 않는가 보다. 여러번 연출하며 배경색깔을 달리하며 세개의 조명을 달리하며 결과를 보았으나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래서 여러가지 소품들을 이용해 보며 악세서리를 조화시켜 찍어보았는데 생각보다 좋은 결과물이 만들어 졌다.

아래는 그 결과물들이다.

1) 빨간색 종류의 옷에 흰색 레이스를 배경으로 매칭되는 색깔을 골라 보았다. 문제는 이런 배경을 가지고 찍었을때 악세서리의 모습이 선명하게 들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매칭이 좋을 수도 있긴 하지만 충분한 빛이 있다 하더라도 선명하게 들어오지는 않는다. 마케팅에 이용할 경우라면 밑의 사진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밑의 사진은 탐론렌즈를 가진 펜탁스 100D를 가지고 50cm 거리를 둔 후 사물을 끌어당겨 찍은 사진이다. 매크로 모드로 셋팅 한 후 가까이서 찍으려 해도 일정한 거리, 적어도 15cm 이상 떨어져야 피사체를 담을 수 있었는데 그렇게 찍으며 배경과 피사체 둘다 선명하여 무엇이 주제어인지 구별하기 어려워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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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두개를 비교해 보아도 그 차이를 선명하게 알 수 있다. 오른쪽 사진은 피사체를 바닥에 놓고 옷과 적절한 색깔을 매칭 시킨 후 찍은 것이고 왼쪽 것은 조명을 모아서 조명사이에 실을 연결하여 그 조명 밑으로 피사체가 오도록 배치한 후 역시 일정한 거리를 둔 후 피사체에 촛점을 맞추어 렌즈를 최대한 끌어당겨 찍은 것이다. 선명도에서는 왼쪽 사진이 만족스럽다고 봐야 한다. 자연과 어울리는 듯한 인공 배경이 단순한 옷감을 배경으로 찍는 것보다는 훨씬 자연스럽다고 해야할까보다.

2) 좀처럼 얻어내기 힘든 결과를 얻었다. 물론 이 악세서리의 경우는 자신의 색깔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내도록 한 것 같다. 배경색에 곤색 치마를 펼치고 조명은 좌우측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게 하였고 정면에서 일정한 거리를 떨어져 렌즈를 당겨 피사체에 집중하고 배경은 색만 표현하도록 맞춘 후 찍은 것인데 자신의 독특한 색깔을 그래로 투사하면서 주변 조형물과도 조화를 잘 이루도록 한 몇 안되는 만족스런 작품이 탄생하였다고 자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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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귀걸이의 경우는 그래도 표현할 수 있는 기본 구성이 나오는데 목걸이의 경우는 만족스런 결과물을 얻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평상시 입고다니는 윗옷중에서 남색계열의 얇은 천을 배경으로 한사람이 목걸이를 들고 찍어 본 것이다. 그러다가 손 흔들림이 심하여 조명 도구에 걸어놓고 배경을 반 투명한 천으로 셋팅하여 찍어 본것이고 그 아래것은 조화를 가진 화분을 배경으로 해 보았다. 배경이 너무 화려하게 하면 목걸이 본래의 모습을 표현해 내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아래 두 사진으로부터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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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업을 하는 동안 사진 비전무가인 나로서도 조명과 소품의 조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 비록 인공적으로 꾸미지만 그 꾸며짐속에서 조화를 발견하도록 노력한다면 언제든지 그 결과는 만족스럽게 다가올 날이있을 것이라는 암시다.

개미 찬가

홀로 있어 외로워 본적이 있는가?
절망하며 뒤돌아 보고 싶어지는 하루

어느새 폭풍우 같은 마음의 짐을 던지고
방안을 데운 물과 같은 존재인 당신

끊임없이 생산되는 배설물을
주 양식으로 날마다 나타나는 존재여

늘 귀찮아 그 생명을 가벼히 취급받아도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는 존재의 무거움

햇살가득 맺혀있는 꿈이런들 어떠하리
내친김에 천국 갈 준비하고

살아있는 목숨
행복이려니 한다.

2008/03/16 12:14 2008/03/16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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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주까지 제출해야 할 마지막 과제를 앞두고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진우가 체했는데 병원에서 닝겔을 맞아야 한다고 전하면서...가뜩이나 약을 싫어하는 난 그것의 무용론을 주장하기에 이르지만 그렇게 계속 주장했다가는 자식에 대한 관심이 없는 아비로 비춰질까봐 그만두었다.

거의 3시간정도를 팔에 바늘을 꼽은채 진우는 편안한 자세로 누워있었다. 기특하기도 하다. 나 같으면 1시간도 채 안되어서 바늘 뽑아달라고 했을텐데...아니 아예 꼽기를 거부했을텐데 말이다. 아직 어리니까 그런셈 치자.

그래서 닝겔이 먼지 검색해 보았다.

 닝겔은 잘못된 발음이고요 링거액[ Ringer's solution]입니다.

환자에게 보다 신속한 영양 공급

우리는 보통 음식물을 통해 일상 생활에 필요한 영양분을 얻습니다. 우리가 거의 매일 먹는 쌀밥과 고기 속에 들어있는 탄수화물과 단백질은 그 상태로는 우리 몸 속으로 흡수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영양분은 우리 몸에서 '소화'라는 과정을 통해 몸 속으로 흡수되기 쉬운 포도당과 아미노산으로 각각 바뀌게 되며, 장의 벽을 통해 흡수되어 혈액으로 공급됩니다.

포도당과 아미노산은 우리의 에너지원으로 쓰이거나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낼 때 사용됩니다. 또한 우리 몸의 체액은 90 %이상이 물이고, 약 3 % 정도가 염분, 포도당, 아미노산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들이 적당한농도를 유지하고 있을 때 건강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름철 뙤약볕을 오래 쬐거나 매우 격심한 운동으로 땀을 많이 흘렸을 때, 설사로 인해 몸의 수분과 염분 등이 순식간에 빠져 나가게 되면몸의 이상을 느끼게 됩니다. 여기에 음식물을 먹기 힘든 환자나, 음식 냄새만 맡아도 바로 구토를 하는 임산부들 또한 영양 부족으로 힘들어 할 것입니다. 이런 경우 링거주사는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링거액은 멸균과 소독, 증류를 통해 각종 균과 이물질을 완전히 제거한 깨끗한 물을 우리 몸 속 혈액의 염분 농도(0.9 %)와 비슷하게 농도를 맞춘후 포도당과 아미노산 등 영양분을 첨가하여 제조합니다. 보통 링거액은혈관으로 바로 주사하는데, 우리 몸의 혈액과 농도가 비슷해 큰 거부감 없이 혈액 속으로 수분과 염분 등을 공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포도당, 아미노산과 같이 바로 에너지원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영양분을 넣었기 때문에, 위에서 설명한 음식물 섭취와 소화를 통해 에너지를얻는 기나긴 절차가 생략될 수 있는 것이죠.

비록 잠시이기는 하지만, 링거주사가 환자들에게는 몸의 기력을 되찾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단지 힘이 없다고 무턱대고 몇만 원씩 하는 링거주사를 병원에서 맞는 것은 낭비입니다. 보통 링거액(5 % 포도당) 1 리터의 열량은 170 kcal 정도로, 밥 반 공기정도의 영양분밖에 없습니다.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좋은 먹거리를 통해영양분을 섭취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입니다.

∴ 마시는 링거액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축구 경기를 하고 나면 온몸이 땀으로흠뻑 젖을 것이고 목이 마를 것입니다. 이 때 삼삼오오 학교 근처 가게에서 스포츠 음료 또는 이온 음료라고 불리는 음료수를 사서 마실 것입니다. '마시는 링거액'이라고 불리는 이 스포츠 음료에도 우리 체액의 농도와비슷한 0.9 % 정도의 나트륨이 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보통의 물을 마시는것보다 몇 배 빠르게 몸 속으로 흡수되어 신속히 수분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몸에 좋은 몇 가지 미네랄들을 함유하여 지친 몸을 좀더 빨리회복 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격심한 운동을 하는 도중에 물이나 주스를 마시면, 몸이 수분을 신속히 흡수하지 못해 배만 부르게 되고 몸의 움직임이 둔해져 차라리 마시지 않는것만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스포츠 음료는 몸에 금세 흡수되기 때문에경기력 향상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링거주사가 환자들에게만 훌륭한 도우미역할을 하는 것처럼, 스포츠 음료도 땀을 많이 흘린 사람에게 특히 좋다는것입니다. 단지 음료수가 먹고 싶다고 스포츠 음료를 자주 마시는 것은 소금물을 자주 홀짝홀짝 마시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름철 더위를 물리치고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적당한 운동과 좋은 먹거리를 즐겁게 잘 먹는 것이 제일입니다. 출처 : [기타] 소년한국일보(2003-08-26) 참고

내가 너무 의사를 못믿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체한 상태에서 링겔을 맞는 모습을 보니 불쌍하기도 하구 무엇인가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 지루하기도 하지만 자식농사 잘 지으려 참고 있을 뿐이다. ^^; 링거액 한번 맞는데 보통 22,000정도 하는 것 같다. 빈속에다가 포도당 성분을 집어 넣는다고 체했던 것이 내려갈지는 의문이지만...

링겔을 맞다가 진우는 나와 함께 화장실로 가서 소변을 세번, 토하러 한번 갔다. 토하고 나니 얼굴색이 한결 좋아진 것 같다. 아마두 체한 거는 토하는 것이 상책이지 않을까 싶다. 링겔은 배고픔을 이겨주기야 하겠지만 그것이 사람몸에 들어간다고 해서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은 내 아집일지 모르지만 맞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각종 약을 비롯한 병원출입은 심각하지 않다면 발걸음을 멀리 하는게 좋지 않을까 싶다. 조금만 참으면 다 해결되었을 일도 애써 심각한 심정으로 의사에게 의존하려는 빈도가 많아지는게 싫어지는 하루다.

그리고 못다한 과제를 하느라 시간을 보내기 시작하는데 자꾸 손가락은 딴 곳을 클릭하고 집중하지 못한다. 이런 저런 잡생각이 많다보니 일의 능률이 급격히 저하되는 느낌이다.

매일처럼 지하철 2호선으로 출근하다보니 그 복잡한 출근길이 생각만 해도 아득해 진다. 가끔씩 복잡해진 사람을 피하려 여유를 가져보려하니 맘처럼 쉽게 되지 않는 것이 출근시간대를 견디어 내는 것이 아닐까 한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목적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지만 저 마다의 능력에 맞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매일처럼 바라본다. 현재의 삶을 회피하는 것이 아닌 현실을 만들어 가며 삶을 경이로운 아름다움으로 만들어 가는 길을 발견하려 애쓰느라 힌머리 생기지 않을까 걱정된다. 2월이 되면 마음이 여유로와 질 것이다. 다가오는 봄을 기다리며 유난히도 눈이 많이 왔던 1월을 지나 온몸을 따뜻하게 적실 기운을 맞이해야 할 것 같다.
2008/01/23 14:12 2008/01/23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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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삶을 살다보면 이런일도 있다. 내가 정말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먼저 하나님 나라로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원하지 않았지만 아직도 옆에 살아있는 듯한 사람이 내 켵을 지키고 있다는 생각을 만들게 하는 일들이 종종 있다. 토요일 피곤한 날이지만 우리가족은 마석으로 향한다. 아이들이 외할머니 집에 도착할 때 가장 가고 싶어하는 곳은 놀이터다. 이날도 어김없이 진우와 의영이는 놀이터를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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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주일예배를 드리고 경춘공원을 향한다. 지나가다가 꽃이라도 사들고 갈까 했는데 죽은 꽃이 뭐가 소용있을까 하며 다들 그냥 빈손으로 그곳을 향한다. 죽음이란 늘상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기폭제이다. 그동안 잘 살았든 잘 살지 못했든 상관없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이곳의 수많은 묘지 앞에서는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그동안 오랫동안 찾아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느끼는지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아쉬운 얼굴을 하시며 꽃혀져 있는 처형 사진속에 비친 그 해맑은 웃음을 바라보며 우수에 젖기도 하신다. 그리고 속상한 마음을 드러내시는게 역력하다.

날은 무척 좋았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아이들은 이곳이 무슨 축제의 장소인 듯 신이 나 있다. 아마두 그런게 어린아이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머리가 커 어느정도 궤도에 오른 이후로는 도저히 아이들처럼 상황에 상관없이 신나할 수 없다. 그게 어른인가 보다. 아이들처럼 순진하게 살던때가 있었던 과거를 떠올리며 새삼스럽게 아이들과 함께 했던 처형의 뒷모습이 쓸쓸하게만 느껴진다. 아내는 토요일날 자기가 왜 이곳을 가느냐며 투덜되기도 하였지만 난 이렇게 말한다. "죽은 사람을 추모하는데 무슨 이유가 있느냐?"며 ... 그날 아이들(세희,진우,의영)은 오랫만에 있었던 나들이 인양 즐거워 했던 것 같다. 아마두 우리는 삶에 파묻혀 자신의 영역에서만 살아가기보다는 삶을 뛰쳐나와 지나간 아름다운 과거와 함께 살아갈 때 진정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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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7 05:40 2007/04/17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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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과 손님의 차이

이 글은 최근 교회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에 바탕을 둔 의견의 글이며 전체를 대표하거나 평가하고자 함이 아니며 현재 있는 것을 개인적으로 느껴지는 것을 정리해 두었을 뿐이라는 것을 미리 밝혀둡니다. 교회는 말 그래도 회중이 모이는 곳입니다. 어느 곳이든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면 이끄는 측과 이끌어 지는측의 피지배 계층이라는 이중구도를 갖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이는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고 부인한다 하더라도 구조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해 보면 금방 판단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 = 하나님의 대변자라는 공식)그것이 권위의 속성이며 그 속성에 충실하고자 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러운 구조로 변해가는 것이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공동체속에서 일어납니다.

1. 일의 진행사항에 대한 책임감
자신이 속해 있는 어느 집단에서든 끊임없이 결과를 만들어 내고 좋은 방향을 위한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그런데 그 고민의 장이 축소되어 몇몇 제한된 사람들이 만들어낸 한정적인 공간은 타자처럼 그 정해진 곳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낯선 장소로 변해간다. 일이란 내가 계획해서 주도적으로 처리해 가는 일이 있으며 다른 사람들이 계획해서 따라가는 것이 있다. 전자는 능동적 대처방안을 강구해 나가지만 후자는 수동적 태세를 갖추게 된다. 그래서 후자의 경우는 일의 경중을 따지는 것보다는 일의 과정을 중요시 하게 된다. 구성원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교회는 그 속성상 목회자 또는 사역자가 절대적 권한을 갖게 된다. 이는 예배시간에서도 나타나게 되는데 가령 예배 형식이 바뀌기 전 우리교회의 예배시간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그 시간분포는 그 길이와 상관없이 일상적으로 진행되는 신앙고백과 찬송이 30% 설교 60% 나머지 10% 정도가 광고와 기타 마무리를 위해서 사용된다. 그래서 어찌보면 예배의 상당부분이 설교 듣는 시간으로 생각하게 된다. 아마두 목회자의 경우는 그 권리를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교회의 부흥이 설교를 통한 사람의 변화에 있는 것인지 사람의 변화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위한 것인지는 각 구성원들의 신앙고백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고 봐야한다. 최근 한국교회의 일반적인 모습은 원맨쇼와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자발적인 예배의 중심을 회복하고자 하는 열의는 주도층의 세밀하지 않은 준비에서 잡음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그것으로 인해 점차 이해의 간극은 벌어지게 된다. 이로 인해 적극적 참여를 멀리한 지체들에게는 일에 대한 책임감이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내가 일하지 않고 하나님이 일하게 한다는 진리의 말씀을 차치하고서라도...) 다른 사람의 일이라 여기게 된다. 이때부터는 심각한 내면의 고민을 하게 된다고 보아야 한다.

2. 기도와 행위
사람은 자신이 현재 배우고 살아가고 있는 영역을 뛰어넘어 생각할 수 없다. 즉, 세계화의 흐름속을 쳐다보며 파헤쳐내던 사람은 그 경험된 영역의 틀에서 사역의 방향을 세워가겠지만 이와 달리 자신이 활동하는 반경안에 있는 영역과 경계에서 벗어나지 않았을때는 그 틀을 벗어난  그 이상의 영역에는 접근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정보를 흡수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신앙의 선배들에게 배웠던 것들을 근거로 그 경험담을 중심으로 이야기 하는 것도 어찌보면 신앙의 선배들이 실패했던 경험을 언급하지 않는 것에서 균형을 잃었다고 봐야 한다. 내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실 것에 대한 믿음은 그 행하실 일을 위해 내가 행동하는 행위가 있어야 진정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기도하고 그 기도의 응답을 끊기있게 기다리는 흐름이 많아지면서 그것이 최고의 대안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던 것 같다. 물론 이것이 나쁘기만 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었을 때 사람이 계획해서 실행하는 것은 인위적이고 좋지 않다는 인상을 심어주게 된다. 이는 철저한 준비와 계획을 대안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인 실패감으로 돌아오게 된다. 여러사람이 모여있는 곳에서 각자 다른 은사를 소유하고 사람들이 자신의 장점과 은사를 사용할 수 있는 장이 되도록 만드는 것은 우리가 속한 교회에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고린도 전서 12장 28절) 우리 각자는 어느 위치에 속해 있는 것일까? 말씀을 듣고 깨달을 때 교회에서는 한두사람의 스타가 필요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물론 한국적 사역구조내에서는 한두사람의 중심축이 필요할 수는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민주적 절차에 의한 예배구조를 만드는 것보다는 권위를 가진 몇몇 지체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을 더 편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 자신부터 그렇다.

3. 대안적 공동체인가?
정에 굶주릴수록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나 마음껏 재잘거리고 싶은 것이 사람의 연약함이다. 그것은 내가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 신앙생활, 생활고를 포함하여 삶의 총체적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포함한다. 대안이라는 것은 나쁜 상황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간다는 것을 내포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고 그것을 주도해 나가는 과정에서 몸과 마음을 모아가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하는 것일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주인행세를 하기 위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손님은 언제나 머물다 떠나기때문에 지금 속해있는 공동체가 나가야할 방향과 흐름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도 않으며 그럴 이유도 없다. 그러나 주인은 손님이 떠나가면 그가 다시 올 수 있도록 갖가지 이유와 친절을 베풀기도 해야 한다.  여기서 공동체에 대한 의무와 권리에 대한 태도가 결정되며 공동체는 나의 것이어서 그속에 계속 소속되어 견고한 고리를 형성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란 선택사항으로 이어지게 된다. 교회가 위치한 지리적 여건도 중요하지만 내가 왜 이 교회에 있느냐에 대한 자기 정체성을 만드는 것은 다른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대안적 제시를 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므로 짧은 소견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우리가 공동체를 형성해 나갈때 아래의 것들이 항상 고려되었으면 좋겠다.
 - 교회일의 진행 사항은 가능하면 공개하여 의견 소통의 장소를 마련한다.
 - 설교를 예배의 전부가 아닌 그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도록 시간 안배를 한다.
 - 정해진 시간안에 예배를 드린다.
 - 성도간의 소통이 있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한다.
 - 주일학교 온전한 예배로 따로 분리한다. (사실 2시간 가까이를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은 예배의 산만함을 차치하고서라도 그 부모인 당사자와 아이들이 고려되지 않은 것이다. 이를 위한 대안중의 하나라면 그 아이들이 충분히 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아이들끼리 모아놓으면 그것을 보아줄 한두 사람의 보호자로도 충분할 것이다. 13명의 아이들을 이제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대상이 되어 버렸다.)
2007/02/09 00:06 2007/02/09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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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어릴적 추억속의 여름 겨울

그때를 기억한다. 여름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고 흐르는 물줄기처럼 온몸을 가르던 빗물같은 내 몸이 오히려 이상치 않았던 것을...겨울에는 꽁꽁 얼어 손과 발을 감싸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때.
대조적으로 최근 10년사이에서 올해만큼 여름과 겨울이 제 구실을 못하는 것은 만나기 힘들었다. 몇몇 영화속에서 지구온난화에 관련된 작품이 나오기 시작하였으며 만화 에니메이션에서도 언급되어 가는 것을 보니 추억속의 여름과 겨울은 이제 쉽게 반복되지 않을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지금의 최저 온도는 한강을 얼리지 못한다. 어제가 대한이라는 가장 추운날이었지만 그렇게 춥지 않은 하루를 보냈다. 지구가 점점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것일까?

불감증

저녁 9시쯤에 갑자기 2층에서 열심히 작업하던 중 건물이 흘들린다. 아무래도 아래층에서 무슨 공사를 하는가 싶었다. 한 10초 정도 계속된 그 느낌이 궁금하여 문을 열고 아래를 쳐다보며 나갔다. 그런데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혹시 별안간 계단이 무너지는 것은 아닐지 되돌아 보며...
그런데 정작 불안이 느껴지기보다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한다. 평상시 이런 일들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정말 심각했던 것은 전혀 불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안에 위기에 대한 대책이 존재하지 않아서인지 아마두 이런 큰일에도 무관심할 수 있다. 무관심은 무지보다 나쁘다. 아마두 사람에게 반복된 무관심은 결국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도록 만들어 간다.

대책

아무도 한강다리를 건너면서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에 펼쳐져 있는 자동차 행렬에 대해서 지구의 미래가 위험하다는 심각한 상상에 빠졌던 날 이해해 주지 못했다. 자기 혼자 편하자고 다들 2평남짓한 아니 1평보다 약간 큰 자동차 안에 생명을 맡기면서 살아가고 공개된 장소에서 대중을 만나기보다는 한정된 공간에서 숨을 쉬고 운전하는 폐쇄성은 인류의 미래에 큰 위협이 될 것이다. 인간은 본시 삶이 평탄케 가는것보다는 시련과 역경을 극복해 가는 것이 더 기쁜 것이다. 나 그래서 자동차 안탈수밖에 없는 동네로 이사온것 같다. 눈에 띄게 좋아진 가족간의 오픈공간이 차로 인해 어디론가 떠나려고만 했던 폐쇠된 공간을 대체하고 있다 느껴진다.

세금

함께 한  술잔을 돌아보며 이젠 빼돌릴 돈도 없어 환급받아 살아간다. 애들이 많아서 세금 덕본건 이번이 처음이다. 수많은 종류의 세금을 돌아보았지만 이번만큼은 환급되는 양이 적지 않았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구, 지금 순서대로 계획대로만 가고 있다면 낭패다. 벌써부터 이상기온이 일어나는데 다들 태연한 것이 부럽다. 우리들속에 안전에 대한 불감증으로 개생하고 있을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지구가 몸살을 앓게하는 대표적인 것은 자동차 [footnote]자동차 매연가스는 그야말로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4계절을 완전히 균형을 잃게 만들었다.[/footnote]다. 이제는 거두어 들인 세금으로 환경을 신경써 주었음 한다. 다함께 살아갈 지구를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의 의무가 아닐까 하며 생활속에 작은 실천을 하는 것은 가능하면 자가용다는 무동력 교통수단을 이용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지금 지진이 나서 떨리는 것은 사람들의 가치관이 물질과 다른 것에 있다는 것을 염두해 두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강도 4.8은 중급에 약간 못미치는 강도이지만 건물이 심하게 흔들릴 정도의 안전치 않은 세기이다. 진원지인 강릉부터 이곳까지 그 영향력 전달 능력은 내가 태어난 이래로 단연 최고다. 지층이 흔들린다는 것이 이런것이라는 것을 느껴본다. 올해는 다들 자동차보다 자전거를 애용해 주는 한해가 되면 어떨까?
2007/01/21 04:57 2007/01/21 0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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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됨의 깊이

사랑이란 자신속에 갖혀있던 것을 오픈공간에 내어 놓는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면 그 내어놓는 것의 목적은 무엇인가? 도와주는 것에 목숨을 내건 사람들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 주위에 내 주위에 찾아보려니 그런 험난한 사람 찾기 힘들다. 그리고 애써 왜면해온 지하철 노숙자들만 생각난다. 그런데 억지로 찾아 애쓰는 것은 나를 위함일까 그들을 위함일까?

아이들이 밖에 신나게 나갔다. 귤과 바나나 사러...그것으로 가족의 행복은 시작되었고 채워진다. 세희가 묻는다 지금 쓰고 있는 것이 무슨 내용이냐고..."응 언젠가 커서 읽어보라고" 오늘 대전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몇명이서 다은이 돕고 있는데 편지를 돌리고 있다고 내가 받아서 다음 친구한테 전해주어야 한다. 등기로 보낸단다. 아직두 이런 작은 일을 실천하고 있다는 것에 경의를 표할뿐이다. 사랑에 구속됨은 이런것일까?
2006/12/10 23:02 2006/12/10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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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대한 단상

종종 발생하는 인터넷
난 하루종일 인터넷 관련 업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정말 관련업무를 많이 한다.

아침 일찍부터 걸려오는 전화는 "컴퓨터가 인터넷이 안되요"라는 문의 전화가 많다.
그럼 난 예전에 용수철처럼 달려갔다오는 습관이 들어서인지 아직도 가슴이 끔쯕한다. 마치 인터넷이 안되는 것이 내 잘못인듯 느껴지기도 하는 양. 그런데 막상 큰 문제인가 싶어 가보면 아주 단순한 방법으로 해결 할 수 있는일들이 대부분이다. 연결되어 있는 허브의 전원선이 나가 있다든지 컴퓨터를 리부팅한다든지 하는 기본적인 처리들로 대부분 해결이 되었다. 사실 시스템 전문영역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발로 뛰어 노동을 하는 것에 비해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해결책들이 많이 발생하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날이 갈수록 사람들이 네트웤에 접속해 있지 않으면 아예 일을 못한다는 말을 한다. 정말 맞는 말일까?

네트웤에 접속해 있어서 매일처럼 들여다 보는 이메일에는 스팸이 넘쳐난다. 스팸처럼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 것두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스팸을 처리하다 보면 한두시간은 훌쩍 지나며 정작 중요하게 답변해 주어야 할 이메일들은 뒤로 밀리게 된다. 시스템 관리자의 속성상 수십개의 로그파일과 시스템 에러 관련 메일 같은 중요한 정보는 스팸에 묻혀져 찾아내기가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게 된다. 하루에 500여개 이상의 스팸과 싸우다 보면 하루종일 시간 가는줄 모르고 그 일에 집중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렇다고 생산적인 일에만 전념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어서 관리라는 것이 무료함을 더해주기도 한다.



인터넷은 기본적으로 의사소통을 위한 툴이다. 거기에 이메일과 웹사이트가 존재하며 개인적으로 늘상 업데이트 되고 있는 블로그라는 미디어들이 존재하고 있다. 의사소통을 위한 이런 기본적인 도구가 삶의 전부처럼 여겨져도 되는 나라에 살고 있다. 미래가 접속의 시대라고 제레미 리프킨이 언급한 것에 이의가 없긴하다. 그럴수록 직접대면을 그리워 하는 사람들이 늘어 가고 있을 것이라 예측해 본다.

서핑을 하다보면 끝없이 연결되어 있는 그믈망에서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 일들에 집중하다보면 어느새 날이 새기도 한다. 깊은 상념속에 자신을 가두어 두지 않고 가벼운 사고가 지배를 하는 사이버 공간에서 현실로 돌아오면 머리가 비어간다. 기본 인프라를 구축해 가고 전산자원을 관리하는 일은 날마다 숨쉬는 공기를 정화해 가고 식수를 퍼올리는 일들이다. 고맙긴 하지만 그 고마움은 우리의 코와 목구멍을 지나는 순간 원점으로 되돌아 가는 이치다. 인터넷은 정보를 교환하고 사람들간의 정을 교류하기도 하는 장소이다. 때로는 사이버 네트웤 연대를 형성해 사회적 이슈들을 고발하고 감시하기도 한다.

항상 인터넷의 단면을 말한다. 음란한 사이트, 자살 사이트등의 얼룩진 결과들은 사이버속에서 이루어지는 정보의 소통, 의사교환, 사이버속의 인간관계 형성등의 장점을 단숨에 덮어버린다. 부정적인 시각과 가치관은 희망을 잃게 한다. 잘 안되는 영역을 강조하다보니 잘되는 영역까지 잘못되어 간다. 시각적 가치를 중요시하다보니 문자의 가치가 사라지고 있다. 난 오늘도 자조해 본다. 영상이 주는 메시지가 때론 간결하고 강렬하지만 아직은 문자가 전해주는 깊이를 느끼지 못하게 한다고...
2006/10/24 00:13 2006/10/24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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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백곰 2006/10/27 07:12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나의 블로그에 답변을 달지. 왜 여기에다 줄줄히 나열하는 것이요.
    부정적인 시각은 긍정을 나을 수 있습니다. 부정의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영어시간에 배운 것 같습니다. 부정은 단순히 네거티브로 작용하면 유용성이 없죠. 부정의 부정은 '비판'(critical thinking)으로 볼 수 있습니다. 비판은 새로운 기회 제공을 창출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사 잘 하시오. 애들 떼내고 돌아다니지 말고요. 이사 잘못하면 집에서 쫓겨난다는 금언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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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과 나

어떤때는 자신의 이야기가 잘못 전달되어 여러가지 불필요한 오해를 일으키기도 한다. 내 생각은 이런데 너의 생각은 어떤 것인지하며 갑론을박하는 것이 모임일 수 있다. 모임의 성격은 다양하다. 교육을 위한 모임, 논의를 위한 모임, 서로 알아가고자 하는 모임, 새로운 지식을 얻고자 하는 모임...

그럼 내가 가지고 있는 모임들의 성격은 무엇일까?

모여있다면 그만큼 힘을 받을만한 일들을 향해 가는 것이 궁극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엔 모여서 교육받는 것이 싫어진다. 모여서 나눔을 하는 것이 좋아지는 이유다. 이제 나이가 들어간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이유다. 나이가 자라가면 자신의 명확한 주장이 생겨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것을 보면...

창밖은 어스름 저녁공기가 뒤덮는다.
지나가는 소음소리는
너희들이 떠들기 좋지 않은 환경을 만들겠다고 한다.
그래도 그 소음은 모임을 방해하진 않는다.
오히려 귀를 쫑긋 세우고 퇴보한 믿음에 불을 지핀다.

따스해진 가슴과 시선을 가지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가슴은 자꾸 답답해지고 입술은 열려지려한다.
여러번 닫았으나 봉해져 있는 입가에는 잔주름이 늘어간다.

종국에 마지막 의식을 통해 들려오는 저녁종소리는 내일을 기약하지는 않는다.

세뇌 [洗腦: brainwashing - to force someone to change their beliefs or ideas, etc by applying continual and prolonged mental pressure]

[원래 가지고 있던 생각을 다른 생각으로 바꾸거나, 어떤 사상과 이론을 반복, 주입시켜 목적한 대로 생각을 가지도록 유도하는 행위. 즉, 어떤 사람이 자기는 용감하다고 계속 생각하여 원래의 불안함을 떨친다면 이것이 자신을 쇄뇌시키는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이 민중에게 공산주의적인 사상을 불어넣어 공산당으로 가입시킨다든가, 다단계업자가 사람들에게 계속 다단계의 이론을 집어넣어 회원으로 끌어들인다면 이것은 타의에 의한 세뇌이다.

반대되는 말은

자각 [自覺, self-consciousness]
  

[일정한 상황에 놓인 자기의 능력·가치·의무·사명 등을 스스로 깨닫는 것] 따라서 자각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경험이나 행위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필요하다. 이러한 의미로 볼 때 먼저 자신의 무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에 의해서, 자각의 개념은 비로소 철학적으로 깊어졌다고 할 수 있다. 철학은 가장 자각적인 학문이라고 하는데, 특히 실존철학(實存哲學)은 자각의 문제를 인간의 유한성(有限性)에 놓고, 둘도 없는 단독자(單獨者)의 지평(地平)에서 파내려간다.

신앙과 철학을 세뇌와 자각으로 비유한다면 어떨까?
2006/10/11 01:17 2006/10/11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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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목적

우리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너를 지으며 너를 모태에서 조성하고 너를 도와줄 여호와가 말하노라(사 44:2)
"하나님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으신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신앙의 정의

지난주 화요일 몇몇 남성들의 모임이 있었다. 그동안 교회의 이곳저곳 하는 일이 많아서 쉬기를 원하는 친구는 이 모임에서 일단 사라지기로 하였고, 나머지 네 사람중에 한명은 수학교육과 편입으로 학기가 시작이 되어서 공부를 해야할때가 되어 모임에서 당분간 배려를 원했다. 그날은 우리 모임의 방향성이 상실되어 표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지 일단 모임을 해서 의견을 듣고자 하는 자리였다.

핵심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 말씀을 많이 나누고
- 모임이 예수그리스도 중심적이었으면 좋겠다.
- 회사생활이 바빠서 말씀을 등에 짊어지고 살아갈 수 없는 황무지 같은 삶에서 조용히 삶을 사는것에 대한 만족감이 있었다.
- 신앙이 휩쓸려 다니는 것이 아니었음한다.
- 책을 통해 나눔이 있었으면 좋겠다.
- 누구때문에 무엇을 했으면 안될것 같고 마음가짐에 열심이 있었으면 한다.
- 한 Chapter 를 한단위로
- 오후 예배시간에 설교로 다시 목사님이 가르치고 있으니...

나에게 있어 그동안의 신앙은 누군가에 의해 주입되어 왔으며 그것으로 인해 어려움을 당할때 늘상 나 자신과 하나님과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주변과의 관계문제가 더 크게 보이는 것을 경험해 왔다. 다양한 신앙서적과 넘쳐나는 복음성가 및 찬송가에서는 오직 그리스도를 최우선에 놓는다. 그것이 틀리다는 것을 부정한 적은 없다. 그런데 늘상 복음의 진정한 의미를 자신의 영적인 상태가 좋아지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예수그리스도는 교회가 잘되는 것보다 교회에 모인 사람들이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더 관심이 있다. 그런데 내가 본 교회의 신자들은 교회에서 위로받고 교제하고 은혜와 충만을 얻으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돋자리 깔고 밤세워 기도하고 성경책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읽다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믿는다. 그런데 최근에 난 그것이 얼마나 단편일률적인 교회 설교교육의 효과인지 다시한번 돼 새겨볼 수 있었다. 사실 여러가지가 불편해진 지금, 교회가 가지는 영적인 권위와 목회자가 가지는 영적인 권위를 생각해 본다. 좀더 배운 사람이 좀더 배우지 못한 사람과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다만 선택받은자와 그렇지 못한자로 교회는 이분화 되어 있을 뿐이다.

선택의 기로에서 난 이제 신앙을 멀리서 보고 싶다.
이미 나를 앞서 살아갔던 현자들은 삶의 궁극적 목적을 말해주거나 삶의 허무함을 노래하였다.

난 단 한마디만 하고 싶다. "타인에 의한 타인을 위한 신앙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신앙이 되기를 바란다"고...
2006/09/19 01:22 2006/09/19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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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나

밤 늦게까지 회의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한시간째 이러고 있다. 그동안 일체 결혼식에는 관심을 잊고 있던 내가 아내의 친구가 결혼한다기에 할 수없이 의영이를 데리고 결혼식장에 갔다. 하필이면 휴일날 결혼을 했으며 그랬기에 그곳을 향한 자동차  행렬은 끝이 없을정도로 밀리기도 하였다.

도무지 올것 같지 않았던 가을이다. 요 며칠새에 부쩍 싸늘해진 공기를 보면 세월은 더위가 더이상 버티지 못할만큼 힘을 발휘하고 있는가 보다. 푸른 하늘이 건물사이고 비추이는 것에 도심의 일상을 담은 것 같아 조금 기분이 안좋으려고 한다.

아내가 순대국을 먹자고 해서 이곳까지 왔다. 벽제 저수지앞이다. 흐르는 물이 없어 어정쩡한 저수지라 여겨지기도 했지만 물속은 유난히도 깨끗하게 보였다. 동생, 엄마, 아빠는 가만히 있는데 세희가 갑자기 멋진 포즈를 취한다. 이에 놓칠세라 하두 냅다 카메라를 눌러 보았는데 구도를 잘 잡은 것 같아 오랫만에 만족스런 스틸사진을 보게 된 것이다.
하루종일 방안을 왔다갔다 하며 쉬지않고 걷는 의영인 철인인가 보다. 부럽다. 아직 그 젊음(?)이^^;;

삶을 돌아볼때마다 언제나 자연은 그대로 존재한다. 그 자연스러운 존재함에 나는 기쁨도 느꼈고 슬픔도 느꼈으며 허무함도 느끼고 희망도 솟아오르곤 했다. 그런 느낌이 자연스러웠던 것은 그만큼 내 안에 느낌도 많았고 순수함도 많았던 때였다. 그래서 지금도 그 너풀거리는 기억속의 일들을 되뇌이며 지나간 시절을 그리워 하고 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희망을 발견하여 개발시키는데 있다고 믿어지는 하루다.
2006/09/08 01:31 2006/09/08 01:31
보람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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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백곰 2006/09/15 07:0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오랜 만에 주인장의 진솔한 모습을 표현한 것 같습니다. 사진도 예술이고요. 역시 사진은 사람들이 자연이나 분위기를 느끼는 그대로 나타내려고 하는 작가의 태도및 '음흉한' 마음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아이들 사진이 제일 좋고요. 그런데 한국인들은 왜 '화장실'앞에서 찍은 사진들이 유난히 많을까요. 또한 청명한 가을하늘도 많은데, 장샘의 가을하늘은 왜 시꺼먼거요. 예전 어르신 말씀에 처갓집과 화장실은 멀어야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 장차 신부가 신랑의 기를 잡으려고 벌써 그런건지요. 장샘 얼굴이 주몽과 대적하는 '철기군'입니다. 온통 얼굴을 가리고, 목부분만 맨살이 드러납니다. 주몽은 목살만 좋아하더군요. 주몽의 검은 강철검이 아니어서, 철기군의 선진무기와 대적하기 힘들어서 그런답니다.

    • 익수 2006/09/18 23:53 고유주소 고치기

      지난주부터 사라진 주몽의 모습이 몹시 궁금해집니다. 그 궁금함이 어느새 도를 넘어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리게 됩니다. 철기군의 약점을 찾아 훈련하여 그들을 멸하고자 하였으나 예기치 못한 것으로 인해 새로운 권력이 형성되어갑니다. 그러다 보니 정말로 순수하게 자신을 발견해 가는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며 그것으로 인해 더할 나위없이 나쁜 관계를 만들어 가게되면서 때론 이해못할 피(?)냄새가 진동합니다. 그래도 여긴 괜찮을른지요? 타인의 위치가 곧 부러움이 되는 시점부터 하늘은 검게 보이는가봅니다. 숨어 파하기를 기다리다보니 이제 그만해야겠어요. 언제 주몽의 칼부림에 목숨을 다할지 슬슬 걱정이 되어갑니다. ^^;; 글구 홀로이 즐기는 알코올은 나누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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